|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
|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를 읽고
능인중학교 교사 민송기
젊은 사람과 나이 든 사람이 언쟁을 할 때 나이 든 사람이 논리에서 밀리기 시작하면 흔히 “너 몇 살이야? 집에 가면 너만한 아들이 있어.” 이런 말을 한다. 지금 이야기하는 것과 나이가 무슨 상관이며, 상대방과 비슷한 아들이 있다는 것이 도대체 무슨 상관인가? 나이 든 사람의 의견이 반드시 옳다는 것인가, 아니면 너도 내 아들처럼 나를 공경해야 한다는 이야기인가?
그렇지만 이런 형태의 말이 우리사회에서는 자연스럽게 통용되고 있다. 우리 주변에서 이렇게 억지들이 도덕, 전통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되어서 통용되는 것들에 대해 김경일 교수는 ‘공자가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다소 전투적인(?) 제목의 책을 통해 신랄하게 비판을 하고 있다.
김경일 교수가 공자로 대표되는 유교 문화가 죽어야만 나라가 산다고 하는 논리의 출발점은 유교문화가 예를 중시하는 것 같지만 실제로 그것은 가진 자, 힘있는 사람, 나이 든 사람, 남자를 위한 윤리일 뿐 약자를 위한 어떤 배려도 하지 않고 있다는 데 있다. 세상의 모든 예라는 것이 일방적인 것이 아님에도 불구하고, 우리나라 유교 문화에서는 약자, 젊은이, 여자를 위한 예는 없다.
버스에서 노인을 위해 젊은이가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아름다운 모습이다. 그러나 자신의 불편함을 감수해 가면서 자리를 양보해 준 젊은이에게 ‘고맙네’라는 말 한마디 할 줄 모르고, 젊은이의 무거운 가방을 들어줄 줄 모르고 당연하다는 듯 자리를 차지해 버리는 노인의 모습은 너무나 쉽게 볼 수 있다.(이런 경향은 젊은이들의 도덕적 타락을 개탄하는 유교문화, 양반문화에 찌든 어른일수록 더 심하다.) 이쯤되면 자리를 양보하는 것은 웃어른을 공경한다는 아름다운 전통이라기 보다는 잔소리 듣지 않기 위해서 피하는 것이 된다. 노인들이 젊은이에 대해 조금만이라도 예를 갖추었다면 아름다운 풍경이 될 수 있었던 것이 거짓과 위선으로 버무려진 모습으로 변하는 것이다.
이러한 일방적인 윤리, 도덕은 비판을 허용하지 않는다는 데 큰 문제가 있다. 내가 이런 말을 어른들 앞에서 한다면 귀담아 들을 어른이 많지 않다는 것은 쉽게 짐작할 수 있는 일이다. 오히려 학교 선생이 어떻게 이따위 말을 할 수 있냐며 비난을 하기까지 한다.
며칠 전에 우연히 도덕책을 보았는데, 모든 논리가 ‘아름다운 전통이므로’, ‘그러지 않으면 안 되므로’로 귀결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김경일 교수는 유교가 근본적으로 판단의 기준을 합리성에 두는 것이 아니고, 과거에 두고 있다는 것이다. 공자는 모든 논리의 근거로 요, 순, 문, 무왕에 두고, 그때에 했던 것들을 본받을 것을 강요하고 있다는 점을 주목하고 있다.
요순시대에 왜 문제가 없고, 도덕이 땅에 떨어졌다는 말이 왜 안 나왔겠는가마는 새로운 세대가 알 수 없고, 그렇기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는 과거를 결점이 없는 것처럼 꾸며놓음으로써 새로운 생각을 말살하고 있는 것이다. 우리의 어른들도 이를 본받아 ‘우리 때는 안 그랬는데.’를 되뇌며 그 시대의 윤리를 젊은이들에게 강요하지 않는가? 청소년문제의 해결책이라면 으레 학생들의 정서와는 맞지 않는 충효교육을 이야기하는 것도 모두 유교의 이런 보수적 상황인식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젊은 생각, 새로운 생각을 무시하는 사회는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계에서 도태될 수밖에 없다. 우리 민족은 우수한 민족이라는 이야기를 우리는 초등학교 때부터 수없이 들어 왔지만 왜 우리 민족은 민족이 만든 나라의 우수함으로 이야기하지 못하고, 박찬호나 박세리 같은 개인을 통해 민족의 우수성을 확인하려고 하는가? 그들을 강조하면 강조할수록 우리나라는 작아진다. 이렇게 우리 민족이 우수함에도 작아진 근본 원인은 역사의 전환점에서 세계사의 대세를 타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할 수 있다. 시대의 흐름을 타거나 혹은 주도하지 못하게 만든 장애물은 바로 새로운 세대, 생각을 ‘철없는’ 것으로 치부해버리는 보수적 유교문화라고 할 수 있다.
물론 유교도 어떻게 해석하느냐에 따라 실학과 같은 진보적인 모습을 보이기는 했지만, 그것은 언제나 소수였을 뿐, 우리사회에서 유교는 언제나 기득권 유지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성장해 왔다. 사랑하는 남녀를 억지로 갈라놓았던 동성동본금혼법을 폐지하는데 물불을 안 가리고 반대하던 유생들이, 젊은이들을 꾸지람하는 것은 누가 안 시켜도 잘 하던 사람들이, 언제 한 번 독재자를 위해 직언을 했던가? 제대로 대우받지 못하는 노동자들을 위해 언제 한 번 목소리를 내 본 적이 있던가?
아마 김경일 교수는 유학을 공부한 사람으로서 공자를 왜곡하는 사람들이 죽어야 나라가 산다는 생각을 했는지도 모른다. 그러나 버릴 것은 버리고, 남길 것은 남기는 식으로 한다면 제대로 바꿔보지도 못하고, 다시 옛날로 돌아갈 것을 우려했기 때문에 ‘모든 걸 다 바꿔’식의 선택을 택한 것인지도 모른다. 그래서 맹자의 첫구절을 뒤집고(맹자가 양혜왕을 만났을 때 왕이 이(利)을 이야기하자 맹자는 인의(仁義)를 이야기한다.) 뒤처지지 않기 위해서는 이익에 충실하라는 이야기를 한다. 이러한 그의 논리는 세계화의 흐름을 타기 위해 우리의 의식 깊은 곳까지 세계적인 의식으로 바뀌어야 한다는 논리로 이어진다.
그러나 이것은 상당히 위험스런 발상일 수 있다. 지금 세계는 인터넷으로 인해 국경의 개념이 약화되고, 자본의 국경도 없는 것은 사실이나, 민족 사이의 국경이 없어진 것은 아니다. 오히려 우리끼리만 잘 살면 된다는 그런 보이지 않는 장벽은 더 높아만 가고 있는 실정이다.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영어를 배우고 세계적인 생활양식을 배운다고 해서 사라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에 신토불이 식의 맹목적인 국수주의를 버리자는 데에는 동의한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민족적 정체성이라는 것이 저절로 생기는 것인가는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비록 잘못된 것이라 하더라도 우리의 것을 모르는 채 어떻게 우리의 정체성이 보존될 수 있을까? 미국식으로 살아간다고 해서 미국인들이 우리를 세계시민으로 거두어 줄 리는 없다. 이런 상황에서 세계화의 흐름을 타는 것도 중요하지만 노예로 살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것도 더 중요한 일이다.
맹자집주(孟子集註)에 보면 ‘도올(檮杌)’이라는 말이 나온다.<晉之乘 楚之檮杌 魯之春秋 一也> 도올은 나쁜 짐승이라는 뜻으로 나쁜 행동들을 통해 후세인들이 경계해야 할 것으로 삼았다는 뜻에서 역사라는 의미로도 사용되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우리는 도올의 역사를 배우지 못하고 조상들의 위대한 세계만을 배워왔다. 이것이 우리사회에 보편화된 유교문화에서 비롯된 것임은 굳이 이야기하지 않더라도 잘 알 것이다. 세계사의 흐름을 타면서도 우리의 정체성을 잃지 않는 길을 어디에서 찾아야 할 것인가는 바로 도올이라는 말 속에 담겨있을 듯하다.
[능인중학교 독서신문]
|
|
|
|
|
HOME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