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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분노의 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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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줄 수 있는 것
- 존 스타인벡의 "분노의 포도"를 중심으로-
세상은 가난한 사람들로 가득 차 있다. 인류의 역사는 가난과의 투쟁이며 그 투쟁에서 승리한 자는 부를, 패한 자는 굶주림과 죽음을 면치 못했다. 가난에 시달리는 사람들을 주제로 하여 쓰여진 스타인벡의 소설 분노의 포도는 우리에게 사람들이 피차에 어디까지 돕고 살 수 있겠는가 하는 문제를 생각해 보도록 강요한다. 우선 소설의 줄거리부터 검토해 보기로 하자.
때는 20세기 초엽의 어느 해 6월, 미국 오클라호마 주의 광할한 농장에는 옥수수와 목화가 무럭무럭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갑자기 몰아 닥친 태풍으로 인해 모든 곡물과 목화는 뿌리 채 뽑혀 버리고 농장에 매달려 살던 수많은 소작인들은 순식간에 생계가 막막해졌다. 급기야는 농사의 기계화로 인해 일거리마저 잃어 버린 농민들은 저마다 살기 좋다는 곳을 향해 뿔뿔히 흩어졌다.
이들 가운데 톰 조오드 일가는 살기 좋은 곳으로 이름 난 캘리포니아를 찾아 실의에 빠진 여행을 계속하고 있엇따. 그 둘 중에 조오드 가의 딸 로자산만은 그래도 미래에 대한 한 가닥 희망을 버리지 않고 임신한 몸으로 태아의 보호에 여념이 없다.
기로고 지루한 여행을 하는 동안 조오드 가의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죽고 맏아들 노아는 강줄기를 따라서 떠나 버린다. 목적지에 대한 불길한 소문으로 인해 전전긍긍하던 조오드는 마침내 목적지에 도착했다. 불길하던 소문은 그래도 사실보다는 좋은 것이었다. 그들은 주린 배를 움켜쥐고 일터를 찾아 헤매지 않으면 안되었다. 그런 와중에 조오드 일가와 동행했던 젊은 목사 케시는 인간 영혼의 존엄성을 끊임없이 역설한다. 그런가 하면 조오드 가의 어머니는 절망에 빠져있는 사람들에게 "될 것이냐 안 될 것이냐:가 문제가 아니라 "할 것이냐 안 할 것이냐"가 문제라고 하면서 사람들을 격려한다.
젊은 목사 케시는 임금인상 투쟁을 벌인 죄목으로 감금되어 있다가 고용주측의 폭력배들에게 매 맞아 죽게 된다. 그 참상을 목격한 조오드 가의 차남 톰은 타오르는 분노를 참을 수 없어 몽둥이로 상대를 때려죽이고 쫓기는 몸이 된다. 남은 가족들은 인근에 있는 녹슨 화차 속에 기거하며 비참한 생활을 한다.
그 해 초가을, 사흘 동안 쉴 새 없이 내린 비로 인해 조오드 일가가 거처하던 화차는 침수의 위기를 맞았다. 설상가상으로 로자산은 오랜 진통 끝에 죽은 아이를 분만하였다. 그들은 곧 홍수를 피해서 화차에서 나와 언덕으로 기어 올라갔다. 마침 언덕 위에는 초라하긴 했으나 한 채의 오막살이가 있었다. 한 가닥 희망을 가지고 오막살이에 들어선 일행은 그곳에서 엿새를 굶은 후에 죽어가고 있는 한 사내을 발견했을 뿐이다. 굶기는 피차에 마찬가지였다.
바로 이때 어머니와 의미있는 눈짓을 교환한 로자산은 성큼 사내 앞으로 다가가 불어있는 자기의 젖을 그의 입에 물려준다. 그리고 나서 오랫동안 잊어 버렸던 미소를 띄운다.
여기 문지기의 아들이 죽었다고 해서 울고 있는 아이가 있다. 그의 아버지는 아이에게 "문지기의 아들이 죽은게 너와 무슨 상관이 있어"하고 소리친다. 그러나 그 아이는 울음을 그치지 않았다.
이것은 프랑스의 지성 시몬느 드 보봐르 여사의 저술 중의 한 구절이다. 서로를 맺어주는 '관계'라는 것, 즉 상관이 있게 해준 것은 눈물이었다. 내가 남을 위해서 울 수 있다면, 만약 그랬다면, 나는 그와 관련을 맺은 것이다. 만약에 누가 나를 위해서 눈물을 흘려 주었다면 나는 그와 더불어 이미 어떤 관계를 맺은 것이 된다. 문지기의 아들이 부인하더라도 이미 그를 위한 눈물이 흘려진 이상 주인의 아들과 그와의 관계는 부인할 수 없는 것이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무엇인가 서로 주고 받을 것은 가지고 잇다. 그것은 금과 은이 될 수도 있고 그보다 더 값진 무엇일 수도 있을 것이다. 굶주린 자는 배고픈 자에게, 배고픈 자는 더 굶주린 자에게, 서로가 서로에게 줄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 로자산이 풍겨주는 인간애의 향기를 음미하며 우리 다같이 마음의 포켓을 다시 한 번 뒤져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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