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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생활의 발견-여유있는 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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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유있는 삶에 대하여
- 임어당의 "생활의 발견"에서-
필자가 대학에 다니면서 존경했던 교수 중 한 분은 전북대학교 영문학과에 출강하던 이은환 선생님이었다. 그분은 영문학 교수로서 필자가 다니던 대전대학(현재의 한남대학교)에서 영국 소설사,영시 등 서너 과목을 강의했으며, 나는 그 학기에 그분이 개설한 세 개의 과목을 모두 수강했다. 나는 그분의 강의도 좋았지만 강의 틈틈이 말씀해주시는, 강의와는 전혀 상관없어 보이는 이야기들에 매료되었었다.
한 번은 강의가 끝난 후에 우연히 친구와 함께 버스를 타러 가다가 길에서 선생님을 만나게 되었다. 우리는 날씨가 너무 덥고, 이따금씩 오는 시내버스는 멀리 와동 쪽 굴다리를 나올 때부터 잘 보이기 때문에 철둑을 건너지 않고 과수원 기슭의 아카시아 그늘에서 버스를 기다리기로 했다. 선생님은 외국시를 우리말로 옮기는 문제에 대하여 이야기를 나누다가, 문득 내게 임어당의 책을 읽은 적이 있느냐고 물으셨다. 나는 비교적 책을 많이 읽는 편이었지만 그 때 까지 임어당의 책은 읽지 못했다. 선생님은 "생활의 발견을 한 권 사보지 그래"하고 말씀하셨다.
이튿날 나는 도서관에서 임어당의 저서로는 유일하게 번역된 "생활의 발견" 이라는 낡은 책 한 권을 발견했다. 잠시 쉬는 시간에 여기 저기를 뒤적거리다가 문득 "한가론(閑暇論)을 발견하고 나는 나도 모르게 "아"하고 탄성을 질렀다. 나는 그 대목에서 선생님께서 우리에게 임어당을 물어 보신 이유를 어렴풋이나마 깨달을 수 있었다. 버스 길에서 선생님을 만난 바로 그 날, 우리는 영국 수필시간에 프리슬리(J.B. Priestly)의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에 대하여"라는 수필을 읽었던 것이다.
신문기자인 프리슬리는 토요일 아침, 화가인 친구와 함께 황무지의 야산에 올라가서 온 세상이 정신없이 바쁘게 돌아가는 동안 바람소리와 새소리를 듣고, 석양을 바라보며 완전한 무위의 하루를 보낸다는 내용이었다. 임어당은 그의 "한가론"에서 이렇게 말한다.
세상에 한가만큼 즐거운 것은 없다. 한가라고 해도 그저 아무 것도 하는 것이 없이 세상을 보낸다는 의미는 아니다. 한가는 사람에게 글을 읽게 하며 명승고적을 여행을 하게 하며 좋은 친구를 사귀게 하며....세상에 이 보다 기쁜 일이 있겠는가?
그는 또 그의 "와상론"에서 "발가락이 해방되어 있을 때에만 두뇌는 해방되고, 두뇌가 해방되어 있을 때에만 참된 사고를 할 수 있다"고 말했다. 그의 글은 사물에 대한 날카로운 직관력과 중국인들이 가진 밉지 않은 과장법이 조화되어 읽을수록 깊이와 묘미가 더했다.
그 후 나는 독서에 대한 이야기가 나올 때마다 상대방에게 임어당의 책을 읽었는가 하고 물어 보는 습관을 가지게 되었다. 그의 책을 읽지 않았다는 대답을 들을 경우, 나는 더 이상 손해보는 거래를 하고 싶지 않아진다. 선생님은 대학에서 은퇴하셨다는데 금년 여름쯤 찾아 뵙고 "이제 임어당의 책을 읽었습니다"하고 다음 말씀을 기다려야 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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