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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포로의 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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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흐프즈(N. Mahfouz)/ 문애희 옮김
자흐샤는 기차가 도착할 시간이 될 무렵이면, 자까지까 역에 제일 먼저 나타나곤 하는 담배 장수였다. 그는 으레 정거장을 장사 잘 되는 곳으로 여기고 있어서, 경험 많은 작은 눈으로 고객을 찾으며, 아무도 못 따를 만큼 잽싸게 플랫폼으로 뛰어가곤 했다. 자흐샤가 그의 직업에 대해 질문을 받는다면, 그는 아마도 욕설을 해댈 것이다. 왜냐하면 대부분의 사람들처럼 그도 자신의 삶에 지쳐 있고, 자신의 팔자에 짜증나 있기 때문이다. 만약 그가 선택권을 쥐고 있다면, 그는 어느 부자집 운전수가 되었을 것이다. 그래야 신사복도 입고, 좋은 음식을 먹으며, 먹을 거리를 위해 아득바득하는 일보다 겨울, 여름철에 따라 적당한 장소로 주인을 모시는 일과, 좀더 안락하고 재미나는 일을 할 수 있었을 테니까…….
이런 일을 꿈꾸게 된 데엔 특별한 이유와 자그마한 동기가 있다. 어느 유명 인사의 운전수인 알구르가 알마으무르의 하녀인 나바위야 앞에 서서, 대담하고 자신만만한 자세로 그녀를 꼬드기는 것을 보았던 날부터 그의 소망은 시작되었다. 그는 알구르가 기쁨에 넘쳐 손을 비비며 그녀에게 말하는 것을 들은 적도 있다.
"내가 반지 갖고 곧 올께."
그녀가 애교 있는 웃음을 띠고 얼굴가리개를 매만지면서 그 끝을 머리에서 올리는 것을 그는 보았다. 실은 그녀가 기름을 발라 윤기나는 그녀 머리를 보이고자 했던 일인 것이다. 그것을 보자, 그의 마음은 불타올랐고, 물어뜯는 듯한 질투를 느꼈다. 그녀의 검은 두 눈 때문에 그는 고통스럽고, 아플 지경이었다.
그는 그녀 가까이 따라가서, 오며가며 그녀 앞에 나타나곤 하다가, 골목에서 그녀와 단둘이 있게 되자, 그녀 귀에 대고 알구르가 그녀에게 했던 말을 다시 들려 주었다.
"내가 반지 갖고 곧 올께."
하지만 그녀는 머리를 옆으로 꼰 채, 얼굴을 찡그리며 멸시하듯 말했다.
"좀 좋은 신이나 신으시지그래."
그러자 그는 마치 고창증(鼓脹症)에 걸린 당나귀처럼 두툼한 두 발을 바라보고, 더러운 옷과 먼지에 쌓인 두건을 보았다.
"이것이 나의 불운과, 나의 행운의 별이 사라진 원인이야."
그는 말했다. 그는 알구르의 직업에 질투를 느끼며, 그것을 바라기도 했다. 그렇지만 그런 소망이 직업과 그 자신을 끊어놓진 않았다. 소망을 꿈에 담은 채, 그는 열심히 일했다.
그 날, 석양이 질 무렵 그는 담배상자를 메고, 올 사람들을 기다리며 자까지까 역에 갔다. 지평선을 바라보니 기차가 연기 구름인 양, 멀리서 오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기차는 점점 가까워져서, 그 부분 부분들이 뚜렷이 나타나더니 경적을 울리며 역 플랫폼에 섰다. 자흐샤는 북적대는 열차를 보고 놀랐다. 그리고나서, 놀랍게도 문 앞에 무장한 보초들도 보았다. 또한 멍하고 의기소침한 눈으로 창문 밖을 내다보고 있는 낯선 얼굴들도 보았다. 사람들이 서로 웅성거리며, 이들은 이태리인 포로들인데 수없이 많이 적에게 붙들려, 지금 수용소로 이동되고 있다고 했다.
자흐샤는 먼지 낀 얼굴들에게 시선을 모으며 놀란 채 서 있었다. 그 후 그는 기가 꺽이기 시작했는데 왜냐하면 슬픔과 가난에 찌든 이 창백한 얼굴들이 끽연에 대한 욕망을 결코 채울 수 없으리라는 것을 확신했기 때문이다. 그들이 자신의 상자를 게걸스럽고 탐욕스레 맛보는 걸 그는 깨달았다. 그래서 그들에게 분노와 멸시의 눈빛을 보냈다. 그가 왔던 곳으로 다시 돌아가려던 때였다. 그 때 그는 유럽식 억양으로 아랍어를 말하는 목소리를 들었다.
"담배요!"
그는 놀람과 의심의 눈초리로 그를 응시하고 나서, 돈을 의미하듯 집게손가락을 엄지손가락에 비볐다. 그 군인은 이해했다. 그에게 머리를 끄덕였다. 자흐샤는 경계하듯 다가가서 군인의 손이 닿지 않을 정도의 위치에 섰다. 그러자 군인은 재킷을 조용히 벗고, 그것을 가리키며 말했다.
"이게 내 돈이요."
자흐샤는 놀라서 경이와 욕망에 섞여 노란 단추가 달린 회색 재킷을 탐색하듯이 살폈다. 그의 마음은 동했지만, 그가 바보나 멍청이가 아닌 바에야 이태리인의 욕망의 먹이가 되지 않기 위해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감추기로 했다. 겉으론 조용히 담배 한 갑을 보이면서, 그는 재킷을 집기 위해 손을 뻗쳤다. 그러자 군인은 얼굴을 찡그리며 소리쳤다.
"재킷 한 벌에 담배 한 값이라구? 열 갑은 줘야지."
자흐샤는 놀라서 뒤로 물러섰다. 그의 욕망은 다소 흔들려 그만두려 했다. 군인은 그에게 소리쳤다.
"적당히 내게 줘야지, 아홉 갑이나 여덟."
자흐샤는 그의 머리를 고집스레 흔들었다. 그러나 군인이 말했다.
"그렇다면 일곱."
하지만 그는 처음과 마찬가지로 고개를 저었다. 걸어가기로 작정한 듯이 보이자, 군인은 여섯에 만족할 것같이 하다 다섯으로 내렸다.
자흐샤는 아쉽다는 듯이 손을 저었다. 그리곤 의자로 돌아와서 앉았다. 화가 난 군인은 그에게 소리쳤다.
"이리 오게나, 넷이면 돼……."
그는 안중에도 없었고, 이를 보이기 위해 담배에 불을 당겨 조용히 맛있게 피웠다. 군인은 화가 나서, 어찌할 줄 몰랐다. 담배를 갖지 않고선 살아갈 이유조차 없는 것처럼 보였다. 그의 요구를 셋에서 둘로 내렸다. 자흐샤는 응하고 싶은 그의 마음과 욕망을 억누르며 앉아 있었다. 군인이 둘로 내렸을 때, 무의식 중에 움직일 기미가 엿보였고, 그 군인은 이를 알아차렸다.
그는 재킷을 든 손을 뻗으며 그에게 말했다.
"이리 주게나."
자흐샤는 일어설 수밖에 없었고, 재킷을 갖기 위해 기차 쪽으로 다가가, 군인에게 담배 두 갑을 주었다. 담배상자를 의자에 놓고, 재킷을 입고 단추를 채웠다. 재킷이 좀 헐렁한 것 같았다. 하지만 그는 별로 신경쓰지 않고, 그의 상자를 집어들고 기쁘고 만족해서 뽐내고 걸었다. 자신감에 차고 기뻐서 그는 플랫폼을 가로질러 갔다. 그의 눈엔 숄로 감싼 나바위야의 모습이 보이는 것 같았다. 그리고나서 중얼거렸다. 그녀가 지금 나를 본다면! 그럼, 오늘 이후론 그녀가 나를 피하지 않을 거고, 멸시에 차서 그녀의 얼굴을 내게서 돌리지도 않을 거야. 알구르도 나보다 더 좋은 걸 찾아내지 못할 거야. 그때, 그는 알구르가 완전한 정장을 입고 있지 재킷 하나만이 아니라는 생각을 해냈다. 그러니 바지는 어떻게 구한다지? 그는 잠시 생각했다. 기차 창문을 통해 바라보고 있는 포로들 머리를 의미 있는 시선으로 바라보았다. 욕심이 그의 마음을 다시 움직여서, 막 가라앉으려던 그의 마음이 들떴다. 그는 기차 쪽으로 다가가서 대담하게 소리질렀다.
"담배요, 담배요, 돈 없는 사람은 바지 한 벌에 담배 한갑! 바지 한 벌에 담배요!"
그는 두세 번 소리쳤다. 그는 자신의 뜻을 이해하지 못할까봐 입고 있던 재킷을 가리키며 담배통을 흔들어댔다. 그의 제스처는 바람직한 효과를 일으켰다. 한 군인이 거침없이 그의 재킷을 벗자, 자흐샤는 그에게로 얼른 뛰어가서 그러지 말라고 손짓했다. 그리고나서 그의 바지를 가리켜 그것이 바로 자신이 원하는 것임을 나타냈다. 그 군인은 상관없다는 듯 어깨를 흔들곤, 바지를 벗어서 교환이 이루어졌다. 자흐샤는 기뻐서 바지가 날아갈까봐 손으로 힘껏 그것을 움켜쥐었다. 처음 자리로 돌아가서 바지를 입기 시작했다. 순식간에 일이 끝났고 그는 완전한 이태리 군인이 되었다. 뭐 부족한 게 있을까 몰라……. 이 죄수들이 따라부쉬를 쓰고 있지 않은 게 실로 유감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신발을 신고 있지 않은가. 그의 인생을 좀먹는 알구르와 대등하게 되기 위해서는 신발을 신고 있지 않으면 안 될 것이다. 그는 상자를 메고, 기차로 달려가 소리쳤다.
"담배요, 신발 한 켤레에 담배! 신발 한 켤레에 담배!"
처음에 했듯이 제스처로 이해를 도왔다. 하지만 그가 새 고객을 발견하기도 전에 출발을 알리는 기차 경적이 울렸다. 그러자 모든 경비병들의 활발한 움직임이 시작되었다. 어둠이 역 주위를 덮고 있었고, 밤의 새가 공중에 웅지를 틀고 있었다. 자흐샤는 걱정스레 멈춰섰고, 그의 눈엔 슬픔과 분노의 빛이 감돌았다.
기차가 움직이기 시작하자 앞칸 쪽에 있던 경비병이 화가 나서 영어, 그리고 이태리어로 소리질렀다.
"빨리 올라타라, 그 쪽 죄수 올라와."
자흐샤는 무슨 말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그는 마음을 풀어 볼 요량으로 비웃듯이 경비병의 행동을 흉내냈다. 경비병의 손에 붙들리기엔 자신이 멀리 있음을 확신하며…… 경비병이 그에게 다시 소리쳤다. 기차는 점점 멀어진다.
"올라타라, 경고한다, 올라타라."
자흐샤는 경멸하듯 입술을 다물고, 경비병에게 등을 돌려 떠나려 했다. 경비병은 위협하듯 주먹을 꽉 쥐고, 어리석은 청년을 향해 총을 겨냥했다. 그리곤 발사했다. 귀를 멍멍하게 하며 총소리가 울려퍼졌다. 놀람과 아픔의 비명소리가 그 뒤를 이었다. 자흐샤의 몸은 그 자리에 꼿꼿이 섰고, 상자를 손에서 떨어뜨렸다. 담배통과 성냥들이 흩어졌다. 그는 뻣뻣한 송장이 되고 말았다.
단편집 <미치광이의 속삭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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