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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읍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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와일더/오화섭 옮김
─────────────《나오는 사람(登場順》─────────────
무대 감독 조지 깁스
깁스 의사 리베카 깁스
조 크로웰 윌리 웹
하우이 뉴섬 에밀리 웹
깁스 부인 웹
웹 부인 기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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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연극은 모두 뉴 햄프셔의 그로버스 코너즈에서 일어나는 일이다.
제 1 막
이 연극은 막도 없고 장치도 없다.
관객이 장내에 들어서서 볼 수 있는 것이라고는 희미한 조명을 받고 있는 텅 빈 무대뿐이다.
이윽고 무대 감독이 모자를 쓰고 입에는 파이프를 문 채 등장하여 왼쪽과 오른쪽 앞 무대에 테이블 하나와 의자 세 개씩을 놓기 시작한다. 그러고는 왼쪽 웹 씨의 집으로 사용될 곳의 모퉁이에 나지막한 벤치를 놓는다.
'왼쪽'과 '오른쪽'은 배우들이 객석을 향하였을 때의 방향이다. '뒤쪽'은 무대 후면의 벽 쪽을 말한다.
객석의 불이 꺼질 무렵 무대 감독은 무대 정돈을 끝내고 오른쪽 프로시니엄에 기대어 뒤늦게 장내에 들어오는 관객들을 보고 있다.
객석이 완전히 어두워지자 그는 입을 연다.
무대 감독 : 이 연극은 '우리 읍내' 라고 합니다. 손턴 와일더 원작, 김XX 기획 연출입니다. (혹은 박XX 기획 김XX 연출입니다.) 이 연극엔 이X 양, 정XX 양, 신XX 양, 양XX 씨, 조XX 씨, 오XX 군, 그 밖에 여러 사람이 출연합니다. 읍내 이름은 그로비스 코너즈라고 하는데 뉴 햄프셔 주에 있습니다. ― 매사추세츠 주 경계선 바로 건너가 되죠. 그러니까 위도 사십이 도 사십 분, 경도 칠십 도 삼십 칠 분이 되는 셈입니다. 첫째 막에서는 우리 읍내의 하루를 보여 드리기로 하겠습니다. 때는 1901년 오월 칠일, 동이 트기 직전입니다.
(닭이 운다.)
저 쪽 동녘 하늘엔 산을 등지고 햇살이 퍼지기 시작합니다. 샛별이 지기 전엔 으레 저렇게 영롱한 빛을 내죠.
(잠시 샛별을 바라보다가 뒤쪽 무대로 간다.)
그럼 우리 읍내의 지리를 설명해 드리기로 하죠. 여기가 ……(이를테면 뒤벽과 병행하여) 행길입니다. 행길 뒤쪽으로 정거장이 있죠. 철로는 저 쪽으로 나 있습니다. 철로 건너는 폴란드 사람 부락인데 프랑스계와 캐나다 사람들도 섞여 삽니다.
(왼쪽을 향하여)
저 쪽에 조합 교회가 있습니다. 그리고 길 건너에 장로 교회가 있고요. 감리 교회하고 유일신(唯一神) 교회는 저 쪽에 있습니다.
침례 교회는 강옆 분지에 있습니다. 천주 교회는 철로 아주 저 쪽에 있습니다. 이것은 시청 건물인데 우체국도 이 안에 있죠. 지하실은 유치장으로 쓰고 있습니다. 언젠가 브라이언이 바로 이 계단에 서서 연설을 한 일이 있죠. 이 쪽 길로 상점들이 즐비하고 그 앞에 고삐 매는 말뚝과 승마대가 있습니다. 우리 읍내엔 오 년은 더 있어야 자동차가 나타날 것 같군요. 읍내에서 제일 돈 많은 은행가 카트라이트 씨가 사게 될 겁니다. …… 저기 언덕 위 커다란 흰 집에 살고 있죠.
이것이 식료품점이고요. 이건 모건 잡화상입니다. 누구나 하루에 한 번은 식료품점에 들르든지 잡화상에 들르게 됩니다. 국민 학교는 저어 쪽에 있고요. 고등학교는 훨씬 저 쪽이죠. 매일 아침 아홉 시 십오 분과 점심때, 그리고 오후 세 시가 되면 온통 운동장에서 애들의 떠드는 소리가 들려 옵니다.
(그는 오른쪽 앞 무대의 테이블과 의자 있는 데로 가까이 간다.)
여긴 우리 의사댁입니다. 깁스 선생댁이에요. 이게 뒷문입니다.
(이 때 무대 뒤에서 포도 넝쿨과 꽃으로 덮인 아취 모양의 창살문을 양쪽 프로시니엄 기둥 옆으로 하나씩 밀어내 놓는다.)
장치가 꼭 있어야 되겠다고 생각하시는 분은 이걸 장치라고 생각하십시오. 이건 깁스 부인의 마당입니다. 옥수수랑 완두콩이랑 꽃이랑 양꽃마리 …… 그리고 우엉이 한창이죠.
(그는 무대를 건너간다.)
그 당시엔 신문이 일주일에 두 번 나왔죠. ……그로버스, 코너즈 센티널이라는 신문입니다. ……여기가 바로 웹 편집 주간 댁입니다. 그리고 이것이 그 부인이 가꾸는 마당이죠. 깁스 부인댁 마당처럼 여기도 해바라기가 가득 났습니다.
(그는 후면 중앙 무대를 본다.)
바로 여기……호도나무가 있습니다.
(그는 오른쪽 프로시니엄 기둥 옆의 자기 자리로 돌아가서 잠시 동안 객석을 본다.)
이만하면 조촐한 읍내지 뭡니까! 제가 알기에 아직 우리 읍내에선 이렇다 할만한 인물이 하나도 나오지 않았죠. 저기 산마루턱에 공동 묘지가 있습니다만 제일 오래 된 비석은 1660년부터 1680년 사이에 세워진 것입니다. 그로버 씨 문중(門中)과 카트라이트 씨 문중, 깁스 씨 문중, 허 씨댁 문중의 비석들이죠.
……이와 같은 성을 가진 분들이 이 근방에 살고 있죠. 자, 아까 말씀드린 대로 동이 틀 무렵입니다. 저기 철로 건너 오막집에만 불이 켜져 있습니다. 폴란드 태생인 여인네가 조금 전에 쌍둥이를 낳았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조 크로웰 집에서는 아들이 신문 배달을 해야 하기 때문에 일찍 일어났습니다. 그리고 정거장에서는 꼬마 호킨스가 다섯 시 사십오 분 보스턴행 열차의 신호를 할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기적 소리가 들린다. 무대 감독은 회중 시계를 꺼내보고 고개를 끄덕인다.)
그야 농촌에서는 ……어디나……젖 짜는 일과 버터나 치즈 만드는 일로 바쁘기 때문에 동트기 전부터 불을 켜놓고 있습니다만 읍내 사람들은 잠꾸러기가 돼서요. 이렇게 해서 ……또 하루가 시작됐습니다. 저기 깁스 의사가 행길을 걸어 오고 있습니다. 쌍둥이 난 집에서 돌아오는 길이죠. 의사댁에서는 그의 부인이 조반 준비를 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통통하고 명랑한 삼십오륙 세 되는 깁스 부인이 오른쪽 아래층으로 내려온다. 그녀는 부엌에서 가상의 창 차일을 올리고 스토브에 불을 피우기 시작한다.)
깁스 의사는 1930년에 세상을 떠났습니다. 새로 세운 병원 이름은 그의 이름을 딴 것이죠. 사실은 깁스 부인이 먼저 죽었죠. ……벌써 오래 전 일입니다. 오하이오 주 캔턴으로 출가한 딸 리베카를 보러 갔다가 거기서 ……폐렴으로 ……세상을 떠나고 말았습니다. 사위는 보험 회사의 사원이었죠. 고인의 시체는 이곳으로 옮겼습니다. 지금 저 위 공동 묘지에 누워 있죠. 깁스 집과 허 씨 집의 무덤들 새에 끼여 있습니다. ……저기 있는 조합 교회에서 깁스 의사하고 결혼하기 전에는 허 씨 집 딸로서 이름은 줄리아였습니다. 우리 읍내에선 이런 일 저런 일 서로 알고 싶어하죠. 저기 웹 부인도 조반 준비를 하려고 아래층으로 내려오고 있습니다. ……여기 깁스 의사가 옵니다. 밤중 한 시 반에 깨우는 바람에 할 수 없이 쌍둥이 받으러 갔었죠. 저기선 크로웰 댁 아들이 웹 씨가 내는 신문을 돌리면서 옵니다.
(깁스 의사가 왼쪽으로부터 행길로 걸어와서 자기 집으로 가까이 가려고 돌아서려다가 발을 멈추고, 가상의 검은 가방을 내려놓고 모자를 벗는다. 그러고는 커다란 손수건으로 맥없이 얼굴을 닦는다. 마른 데다 야무지고 민첩한 웹 부인이 왼쪽 부엌으로 들어오며 에이프런을 친다. 그녀는 스토브에 나무를 넣고 불을 붙이고 조반 준비를 하는 동작을 계속한다. 갑자기 열한 살 먹은 조 크로웰의 아들이 행길 오른쪽에서 뛰어나와 가상의 신문을 이 집 저 집 문간에 던진다.)
조의 아들 : 깁스선생, 안녕히 주무셨어요?
깁스 의사 : 잘 잤니, 조.
조의 아들 : 선생님, 누가 아픈가요?
깁스 의사 : 아니다. 저 쪽 폴란드 사람 부락에서 쌍둥이를 낳았단다.
조의 아들 : 신문 여기서 드릴까요?
깁스 의사 : 그래, 이리 다오. 수요일 이후 뭐 중대한 일이라도 일어났니?
조의 아들 : 그럼요 . 포스터 선생님의 콩코드의 어떤 사람한테 시집 가신대요.
깁스 의사 : 아 그래, ……그래 너희들 생각은 어떠냐?
조의 아들 : 그거야 제가 참견할 일이 아니죠. ……하지만 선생이 되려고 맘먹었으면 계속해서 교단에 서야 되지 않아요?
깁스 의사 : 네 무릎은 어떠냐?
조의 아들 : 아무렇지도 않아요. 생각 안 하기로 했어요. 그런데 선생님 말씀대로 비가 오려면 무릎이 먼저 가르쳐 주는군요.
깁스 의사 : 오늘은 뭐라고 가르쳐 주대? 비가 오겠다든?
조의 아들 : 아뇨.
깁스 의사 : 정말이냐?
조의 아들 : 네에.
깁스 의사 : 무릎도 실수할 때가 있을 게 아니냐?
조의 아들 : 아아뇨.
(조 사라진다. 깁스 의사 신문을 읽고 서 있다.)
무대 감독 : 저 애에 대해서 말씀 드려야겠습니다. 저 애는 아주 머리가 좋았습니다. ……이 곳 고등학교를 졸업했는데 자기 반에서 첫째였죠. 그래서 매사추세츠 공과 대학에 들어갈 장학금을 얻었습니다. 공과 대학에서도 첫째로 졸업했죠. 그 때 보스턴 신문에 굉장하게 났었으니까요. 조는 훌륭한 엔지니어가 되려된 참이었습니다. 그러자 전쟁이 일어나고 조는 불란서 전선에서 전사했습니다. ……십 년 공부가 무용지물이 되고 말았죠.
하우이·뉴섬 : (왼쪽 무대 뒤에서) 어서 가지 못해, 베시! 오늘은 왜 이 모양이냐?
무대 감독 : 하우이 뉴섬이 우유 배달을 하며 옵니다.
(하우이 뉴섬은 삼십 세 가령이며 작업복을 입고 왼쪽 행길에서 온다. 그의 옆에는 보이지 않는 가상의 말과 마차가 있다. 거기 가상의 시렁을 매고 우유병들을 매단 것이다. 병이 부딪는 소리가 들린다. 그는 웹 부인 집 창살문 앞에 몇 병 내려놓고 깁스 부인 집으로 건너가다가 중앙에서 발을 멈추고 깁스 의사에게 말한다.)
하우이 뉴섬 : 선생님, 밤새 안녕하셨어요?
깁스 의사 : 하우이, 잘 잤나?
하우이 뉴섬 : 누가 아픕니까?
깁스 의사 : 저 쪽 고루슬라브스키 부인 집에서 쌍둥이를 낳았다네.
하우이 뉴섬 : 쌍둥이라고요? 우리 읍내도 해마다 식구가 느는군요.
깁스 의사 : 비가 올 것 같은가?
하우이 뉴섬 : 아뇨. 안 옵니다. 좋은 날씬데요. ……곧 벗겨질걸요. 베시, 어서 가자.
깁스 의사 : 여, 베시
(그는 말을 쓰다듬는다. 말은 후면 중앙에 머물러 있다.)
저 말은 몇살 먹었나?
하우이 뉴섬 : 열일곱 살이 됩죠. 그런데 로크하트 댁에서 매일 받던 우유를 그만둔 이후 베시는 길을 잘못 들고는 한답니다. 전과 마찬가지로 그 댁에 한 통 내려놓고 싶은 모양이죠.……기어코 그 댁을 들러 오게 만드는군요.
(그는 깁스 부인 집 뒷문에 다다른다. 부인은 그를 기다리고 있다.)
깁스 부인 : 어서 와요. 하우이
하우이 뉴섬 : 밤새 안녕하십니까. 선생님께서 저기 오시는데요.
깁스 부인 : 그래요? 오늘은 배달이 좀 늦은 것 같군요.
하우이 뉴섬 : 네. 크림 분리기가 고장이 나서요. 어떻게 그렇게 됐는지 모르겠군요.
(그는 후면 중앙의 깁스 의사 앞을 지난다.)
선생님! 갑니다.
깁스 의사 : 하우이, 잘 가게.
깁스 부인 : (이층에 대고 부른다.) 얘들아! 얘들아! 일어날 시간이다.
하우이 뉴섬 : 가자, 베시.
(오른쪽으로 사라진다.)
깁스 부인 : 조지! 리베카!
(깁스 부인은 자기 집 뒷문에 오자 창살문을 통하여 집안으로 들어간다.)
깁스 부인 : 여보, 잘 됐수?
깁스 의사 : 응, 그거뭐…… 고양이가 새끼 낳는 것 같지.
깁스 부인 : 베이콘은 금방 될 테니까 앉아서 커피나 드세요. 아침나절 둬 시간 주무시구려.
깁스 의사 : 글쎄……웬트위스 부인이 열한 시에 온댔는데. 증세야 뻔하지. 위장병일거야.
깁스 부인 : 그럼 세 시간밖에 못 자겠수. 여보, 이러다간 큰일나요. 어디 다른 데로 가셔서 푹 쉬시도록 해 드리고 싶군요. 그렇게 하면 몸에 좋으실 텐데.
웹 부인 : 에밀리! 일어날 시간이다. 윌리! 일곱 시라니까!
깁스 부인 : (스토브 앞에서 음식 만드느라 바쁘다) 여보, 조지한테 말씀 좀 하세요. 암만해도 걔가 요새 이상하다니까요. 손가락 하나 움직일려고 하지 않아요. 나무 좀 빠개달라고 해도 막무가내거든요.
깁스 의사 : (수채에서 손을 씻고 닦는다.) 그놈이 건방지게 굽디까?
깁스 부인 : 아뇨. 그냥 투덜댄다니까요. 마치 생각하는 게 그 야구예요. ……조지! 리베카! 학교 늦는다!
깁스 의사 : 음!
깁스 부인 : 조지!
깁스 의사 : 조지, 빨리 빨리 해!
조의 목소리 : 네, 아버지
깁스 의사 : (무대에 나가며) 어머니가 부르는 소리 안 들리니? 난 이층으로 가서 눈 좀 붙여 볼까.
웹 부인 : 월리! 에밀리! 학교 늦는다! 월리! 세수 좀 깨끗하게 해라. 그렇지 않으면 엄마가 올라가서 씻길 테다.
리베카·깁스의 목소리 : 엄마, 난 무슨 옷을 입어요?
깁스 부인 : 떠들지 마라. 아버지께선 밤새 왕진 갔다 오셨어. 좀 주무셔야지. 파란 옷 빨아서 다려 놓았다. 어미가 어련하겠니.
리베카 : 엄마, 난 그 옷 싫어.
깁스 부인 : 제발, 조용해.
리베카 : 밤낮 병난 칠면조처럼 파란 옷만 입구 가는걸 뭐.
깁스 부인 : 이것 봐, 리베카, 얼마나 예뻐 뵌다고 그러니.
리베카 : 엄마, 오빠가 비누를 던져요.
깁스 부인 : 내 올라가면 둘 다 때려줄 테다. 안 때릴 줄 아니?
(공장의 기적 소리 울린다. 두 집 애들이 뛰어들어와서 식탁 앞에 자리잡는다. 오른쪽에 열여섯 살쯤 된 조지와 열한 살 된 리베카. 왼쪽에 그들의 나이와 같은 에밀리와 월리. 그들은 교과서를 끈으로 매서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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