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과 함께 한 시대를 이끌어온 황희 정승은 1363년에 개성에 태어났습니다. 20세 때 생원시에 합격하였으며, 26세에는 문과에 급제하고 고려의 마지막 임금인 공양왕 때부터 성균관의 학관이 되었습니다. 황희는 1392년 고려가 망하자 두문동에 은거하였지만 조정의 요청과 동료들의 천거로 성균관 학관으로 돌아왔습니다.
 
그는 이후 태조와 태종의 신임을 받으며 성장을 거듭하였습니다. 그는 태종 시절에 이미 이조판서에 올라 있었습니다. 그러나 황희는 1418년 양녕대군 폐위를 반대하다가 태종의 진노를 사서 유배되어 결국 태종이 물러날 때까지 등용되지 못하다가 세종 4년에야 유배가 풀려 관직에 되돌아오는 아픔을 겪기도 하였습니다.

황희가 젊었을 때의 일입니다. 하루는 들길을 걸어가다가 좀 떨어진 곳에서 소 두 마리를 부리며 밭을 가는 농부를 보았습니다. 황희가 가까이 다가가 물었습니다.
 "여보시오. 그 두 마리 소 중에 어느 놈이 더 일을 잘 하오?" 
그런데 농부가 일손을 멈추고 황희에게 가까이 다가오더니 귀에 대고 이렇게 속삭이는 것이었습니다.            "저기 저 누렁이는 일도 잘하고 말도 잘 듣지만 저쪽 검둥이는 일도 잘 안하고 꾀만 부리면서 말도 잘 안 들어요."
황희가 피식 웃으며 말했습니다.
 "에이, 여보슈! 그런 걸 가르쳐주는데 굳이 여기까지 와 귀엣말을 할 건 뭐요? 거기서 얘기해도 다 들릴 텐데." 
그러자 나이든 농부가 정색을 하며 대꾸했습니다.
 "어허, 모르시는 말씀! 그건 선비님이 아직 젊어서 모르고 하는 소리외다. 아무리 말 못하는 짐승이라도 제 흉을 보는데 좋아할 리가 있겠소?"

그 순간 황희는 깨달았습니다. ‘아하, 그렇구나! 내 공부와 수양이 이처럼 밭가는 농부보다도 못하니 아직도 멀었구나. 가축조차도 제 흉을 보면 싫어하거늘 사람이야 오죽하랴. 내 앞으로 각별히 언행언동에 조심하리라!’ 그렇게 생각한 황희는 더욱 과묵하고 침착하며 매사에 신중하게 처신했습니다.

세종이 어느 날 백성의 복장을 하고 황희의 집에 암행감찰을 나갔습니다. 찾아간 황희의 집은 초라한 단칸집에 담도 없었습니다. 그러나 왕은 ‘이 정도를 가지고 청백리라 할 수 있을까?’ 라며 의아해하다가 막상 거처하는 안방을 보고는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재상의 방에는 장식품이라고는 그가 즐겨 보는 책 밖에는 아무것도 없었고 방바닥에는 거친 멍석이 깔려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또 다른 일화도 있습니다. 어느 날 황희 정승 집에서 일하는 여자 하인 둘이 손님 맞을 준비를 하다가 말다툼을 벌였습니다. 한참 동안 옥신각신 싸웠지만 결론이 나지 않았습니다. 그러다 여종 둘은 마침내 황희 정승에게 달려갔습니다.
  “대감마님, 손님이 오시면 배가 고프니까 음식부터 장만하는 게 옳지요?" 황희 정승이 대답했습니다.
  “오냐, 네 말이 옳다!" 그러자 이번에는 다른 여종이 말했습니다.
  “마님, 손님을 맞는 데 집안이 어지러우면 예의가 아닌 줄 압니다. 집안을 청소하여 손님 기분을 좋게    하는 게 우선이 아닙니까?" 
이 말을 들은 황희 정승은 또 고개를 끄덕이며 옳다고 했습니다. 이 때 옆에서 이 광경을 지켜보던 부인이 물었습니다.
  “아니, 세상에 그런 대답이 어디 있습니까? 무슨 일이든 한쪽이 옳으면 다른 쪽이 그른 법인데, 이 말도 옳다고 하고 저 말도 옳다고 하면 대체 어느 쪽이 옳다는 말입니까?" 
그러자 황희 정승은 너털웃음을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허허. 듣고 보니 부인 말도 옳소!" 두 여종과 황희의 부인은 일제히 웃음을 터뜨렸습니다.
  “사람은 제 잘못은 생각하지 않고, 제가 잘한 일만을 쳐드는 법이니라. 각자 잘한 일만 나에게 말을 하니, 나도 모두 다 잘했다고 할 수밖에 다른 수가 있는가?" 

두 여종은 얼굴이 빨개져서 황희 정승 앞을 물러갔습니다. 
 
이러한 일화에서 볼 수 있듯이 황희는 청렴결백한 관리로, 마음씨 고운 할아버지로, 과단성 있는 정치인으로 우리에게 기억되고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