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위에 오른 태종은 그 동안 추진해 온 왕권강화와 중앙집권체제의 확립, 민생의 안정, 제도의 확립을 통한 사회질서의 안정 등을 더욱 구체화시켜 실행하고자 하였습니다. 태조와 정종 당시에도 정사에 개입한 적은 있었지만 이제는 스스로 결정하고 문제를 해결하며 새로운 대안을 만들어내야 했습니다.

태종은 왕권의 계승을 명확히 하기 위해 후계 문제를 고려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후사를 정한다는 것은 참으로 어려운 일이었습니다. 또 그 후계자가 얼마만큼 기대에 부응할 것인지에 대해서도 걱정되는 것이 당연하였습니다.
 
일단 1402년(태종 2년) 4월 18일 당시 8살이 된 장남 ‘제’를 원자로 봉하고, 원자가 학문을 할 수 있도록 성균관의 동북쪽 모퉁이에 학궁을 지었습니다. 그런데 태종의 비인 민씨의 형제인 민무휼, 민무질, 민무구 등이 세자'제'를 왕으로 삼아 권력을 잡으려고 날뛰었습니다. 태종도 처남들의 그런 행실을 잘 알고 있었습니다. 
  ‘저들의 횡포를 그냥 두었다가는 큰 일이 일어날 텐데.......'
그러나 앞장서서 그들의 난폭한 행동을 막으려고 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함부로 말했다가는 뒤에 어떤 보복을 당할지 알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격이 대쪽같이 곧은 황희는 그들을 그냥 둘 수가 없었습니다. 황희는 위험을 무릅쓰고 민씨 형제들에게 대항하고 나섰고 결국 다른 중신들도 들고 일어났습니다. 이에 힘입어 태종은 민씨 형제들은 물론, 여기에 관계된 신극례, 이무 등을 처형하거나 귀양을 보내었습니다. 이 사건을 ‘민무구의 옥사'라고 합니다.

이런 일이 있은 뒤부터 세자는 글도 읽지 않고 행실이 삐뚤어지기 시작하였습니다. 날이 갈수록 원자인 양녕은 태종의 기대를 만족시키지 못하였습니다. 거리에 나가 부랑배와 어울리기를 예사로 하고, 또 스승의 말을 듣지 않고 사냥만 다녔습니다. 술을 마시고 궁녀를 희롱하는가 하면, 몰래 궁궐 담을 뛰어 넘기 일쑤였습니다. 어머니 원경왕후도 장성한 아들 양녕 대군이 이렇게 비뚤어져 가는 것에 대해 어떻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이복형제와 형들과의 긴장감 속에서 왕위에 오른 태종은 그렇게도 쉽게 세자의 길을 벗어나고 있는 양녕에 대한 실망감이 날이 갈수록 커졌고 급기야 세자를 폐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태종이 세자를 폐하려고 한 뒤부터 둘째 왕자인 효녕 대군은 순서로 보아 당연히 자기에게 세자 자리가 돌아 올 것으로 믿고, 몸가짐을 조심하고 더욱 열심히 공부하였습니다.

반면에 셋째 아들인 충녕의 성품은 바르고 차분하며 학문을 좋아했습니다. 충녕은 네 왕자 가운데서 가장 총명하고 덕성도 뛰어나, 장차 왕으로서 능히 훌륭한 정치를 할 수 있는 인물이었습니다. 태종의 생각에 가장 적합한 후계자로는 효녕이 아닌 셋째인 충녕이라고 판단하였습니다.
 
태종은(1418년) 세자를 결정해야 될 시기에 이르렀습니다. 비록 이직, 황희 같은 강직한 대신들의 반대와 형을 대신하여 아우가 세자에 오른다면 분란이 생길 것이라며 울면서 반대하는 원경왕후가 있었지만, 태종은 결국 그 해 6월 초 양녕을 폐위하고 충녕을 세자로 책봉하였습니다.
 
이분이 바로 후에 우리 역사에 훌륭한 업적을 남기신 성군 ‘세종대왕’이십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