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사회는 엄격한 신분사회였습니다. 그러나 무신들이 정권을 잡으면서 신분질서가 문란해졌고, 중앙과 지방, 상층계급과 하층계급 사이에 충돌이 잦아지면서 심지어 농민과 노예에 의한 반란까지 일어나게 되었습니다. 그 중에서도 가장 대규모적이고 목적이 뚜렷하였던 것이 바로 1198년(신종 1년) 만적의 난이었습니다.

당시 만적의 난이 일어날 수 있었던 것은 무신 정권 때 최고 집권자 중 한 명인 이의민이 천민 출신이었다는 것이었습니다. 이의민이 노비의 신분으로 무신정권의 최고 집권자가 되면서 천민도 높은 지위에 오를 수 있다는 생각을 가지게 되었던 것이 만적의 난이 일어날 수 있었던 큰 배경적 요인이었습니다.

최충헌의 사노였던 만적은 음모를 꾸미면서 다음과 같이 말하였습니다.
  “국가에는 경계의 난 이래로 귀족 고관들이 천한 노비들 가운데서 많이 나왔다. 장수들과 재상들의 씨가 따로 있는 것이 아니다. 때가 오면 아무나 할 수 있는 것이다. 우리라고 해서 어찌 힘든 일에 시달리고 채찍질 아래에서 고생만 하고 지내야겠는가?”
이에 노비들은 누런 종이 수천 매를 오려 정(丁)자를 가위로 새겨 표식으로 삼기로 정하였습니다.
  “궁중 노비들은 안에서 숙청할 자들을 숙청하고, 우리들은 성 안에서 봉기하여 먼저 최충헌을 죽인 후 이어 각각 그 상전들을 죽이고 천적을 불살라 버려 삼한에 천인을 없애자. 그러면 공후장상을 우리 모두 할 수 있을 것이다.”

이에 동조한 사노들은 각자의 상전을 죽이고 종 문서를 태워 버릴 것을 결의하였고, 드디어 약속한 날이 되어 모두 모였는데 어찌된 까닭인지 불과 수백 명 밖에 모이지 않았습니다. 주동 인물들은 예정대로 할 것인가 말 것인가 고민하다가 우선 더 많은 노비들이 참여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판단하고 다시 거사 일을 조정하기로 하였습니다. 그들은 결집 장소를 보재사라는 사찰로 정하고
  '일의 비밀을 보장 못하면 성사하지 못하니 누설치 않도록 조심하라'고 서로 당부하였습니다. 그러나 거사 일을 연기한 것이 결정적인 실수가 될 줄은 누구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율학박사 한충유 집 노비인 순정이 한충유에게 이 일을 밀고하였고 놀란 한충유는 즉시 만적 등의 역모 내용을 최충헌에게 알리게 되었습니다. 이에 따라 만적을 비롯하여 백 여 명의 주동 인물들이 대거 체포당하게 되었던 것입니다.

노비들의 반란이라는 점에 격분한 최충헌은 주동 인물 백 여 명을 모두 강물에 생매장시켜 버렸습니다. 이와는 대조적으로 봉기 계획을 누설한 순정에게는 백금(은) 80냥을 상으로 주고 노비 신분에서 벗어나 양인이 되게 하였습니다.

미수에 그친 만적의 난은 이것으로 평정되었고, 최충헌은 봉기에 참여할 예정이었던 노비들이 너무 많다는 것을 알고는 주동 인물 백 여 명만 처형하는 선에서 사건을 마무리 지었습니다. 이렇게 만적의 반란은 손 한번 제대로 써보지 못한 채 완전히 계획 단계에서 끝나버린 미수 사건이었습니다.

그러나 무신정권 이후 붕괴된 신분 질서에 상응하여 노비의 신분에서 벗어나려 했던 만적의 반란은 신분해방운동이라는 점에서 역사적 의의가 매우 높습니다. 다시 말해서 이후 일어난 천민들의 반란과 더불어 만적의 반란은 고려사회의 신분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한 천민들의 반란이자 우리 역사상 가장 대표적인 노예해방운동이었던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