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 박혁거세가 왕위에 오른 지 39년 되는 어느 날이었습니다. 계림의 동쪽 아진포 갯가에 사는 한 노파가 바닷가를 거닐고 있었습니다. 그때 어떤 배 위에서 난데없는 까치들이 모여 큰소리로 울며 나는 것이 보였습니다. 그 곳으로 가 보니, 배 안에 궤짝 하나가 놓여 있었습니다. 노파가 이상히 여기며 그 궤짝을 열어 보니, 단정하게 생긴 남자 아이가 노비들과 함께 들어있었습니다. 노파는 그들을 집으로 데리고 와, 정성껏 대접했습니다. 그로부터 7일이 지나자 남자아이가 할머니에게 말했습니다.
 “저는 원래 용성국의 왕자입니다. 저의 아버지는 그곳의 임금이신 함달파왕입니다. 아기가 없어 애태우던 어머님은 오래도록 지극정성으로 기도하여 마침내 임신을 하게 되었습니다. 그런데 아기는 나오지 않고 7년 동안이나 뱃속에 있었답니다. 그리고 태어난 것은 아기가 아니고 커다란 알이었습니다. 사람으로서 알을 낳은 것은 흉한 일이라고 생각하신 아버지께서 신하들과 의논한 끝에 알을 바다에 버리라고 하셨습니다. 어머니는 어쩔 수 없이 몰래 알을 비단 보자기에 싸서 동해에 버리셨습니다. 저희가 용성국 해안을 떠나자 어디서 나타났는지 붉은 용이 나타나 배를 이곳으로 이끌고 왔습니다.”
이야기를 들은 할머니는 이 아이를 정성껏 키웠습니다. 그리고 알을 깨트리고 궤짝에서 풀려 나왔다 하여 아이의 이름을 ‘탈해(脫解)’라고 지었습니다. 또한 까치가 울어서 아기를 얻었다고 하여, 까지 작(鵲)자에서 한쪽을 떼어 ‘석(昔)’으로 성을 삼았습니다.

석탈해가 크자 할머니는 탈해를 불러 말했습니다.
 “너는 바닷가에서 평생을 보낼 사람이 아니다. 서울로 가서 학문과 덕을 닦도록 하여라.” 
할머니의 말대로 서울로 간 석탈해는 토함산의 언덕 위로 올라갔습니다. 높은 곳에서 내려다보니 마침 마음에 드는 반월형의 집이 한눈에 들어왔습니다. 그 곳에는 이미 호공이란 사람이 살고 있었습니다. 
 “내가 저 집을 차지하리라.”
석탈해는 곧 행동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는 밤이 깊어지기를 기다려 호공의 집 곁에 몰래 숫돌과 숯 부스러기를 묻어 두고, 아침이 되자 호공을 찾아가 말하였습니다.
 “이 집은 우리 조상이 살던 집이오. 어서 집을 내놓으시오.”
이렇게 하여 호공과 탈해는 서로 자기의 집이라고 주장하다가 관가에 판결을 부탁하게 되었습니다. 관가에서 탈해는,
 “우리 집은 원래 대장장이었는데, 얼마 동안 이웃 마을에 나가 있다 돌아와 보니 저 사람이 살고 있는 것입니다. 그 집 둘레의 땅을 파헤쳐 보면 아실 겁니다.”
관원이 탈해의 말에 따라 호공의 집 둘레를 파헤쳐 보니, 과연 숫돌과 숯 부스러기가 나와 그 곳이 지난날 대장간의 터임이 증명되었습니다. 마침내 탈해는 호공의 집을 차지하게 되었습니다.

이 소문을 들은 신라의 제 2대 임금인 남해왕은 석탈해가 매우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생각해, 신하로 삼아 곁에 두었습니다. 신하가 된 석탈해가 온갖 어려운 일들을 지혜롭게 해결해 나가자, 더욱 그를 신임하게 된 남해왕은 석탈해를 자신의 딸 아호와 결혼시켰습니다.

남해왕이 왕위에 오른 지 21년 되던 가을에 세상을 떠나면서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죽거든 석탈해에게 왕위를 물려 주거라.”
신하들과 남해왕의 아들 유리도 아버지의 유언대로 석탈해에게 왕위를 물려주려고 하였습니다. 그러나 석탈해는 반대를 하였습니다.    
 “그럴 수는 없습니다. 유리 왕자는 영특할 뿐 아니라 선왕의 피를 이어 받은 자손입니다. 임금은 당연히 유리 왕자가 되어야 합니다.”
 “제가 비록 왕자이지만 그 인품이나 덕이 저보다는 당신이 한 수 위입니다. 신라의 장래를 위해서 당신이 왕위를 이으셔야 합니다.”
유리왕자가 계속 사양하자, 석탈해는 한 가지 방법을 생각해냈습니다. 
“그렇다면 좋습니다. 예로부터 덕이 높은 사람은 이가 많다는 얘기를 들었습니다. 그러니 떡을 깨물어 둘 중 이의 수가 더 많은 사람이 왕위에 오르는 것이 어떻겠습니까?”
유리왕자가 찬성하자, 두 사람은 가져온 떡을 깨물었습니다. 이의 수를 헤아려 보니 유리 왕자의 이가 한 개 더 많았습니다. 하지만 사실 석탈해는 그 전부터 유리왕자의 치아 수가 자신보다 더 많다는 것을 알고, 일부러 임금의 자리를 양보하기 위해 이런 꾀를 쓴 것이었습니다. 그리하여 석탈해의 꾀로 유리 왕자가 신라의 세 번째 왕이 되었습니다. 그가 바로 유리 이사금입니다. ‘이사금’이라는 말은 잇자국이 많은 사람을 뜻하는데, 임금을 뜻하는 이사금이라는 칭호는 바로 여기서 유래된 것입니다.

유리 왕자가 왕위에 오른 후에도 탈해는 유리왕을 도와 일했습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 유리왕이 재위 34년에 이르러 유언을 남겼습니다. 
 “내가 세상을 떠난 후에는 탈해가 왕위를 잇도록 하시오. 이후라도 왕위는 아들과 사위 중에서 가장 덕망이 있는 자로 뽑도록 하시오.”

결국 유리 이사금이 죽자, 그 뒤를 이어 석탈해가 왕위를 이었습니다. 그가 바로 신라의 네 번째 임금인 탈해 이사금이었습니다. 탈해는 왕이 된 후에 호공을 불러 그 집을 돌려주었습니다. 그리고 호공을 재상으로 삼아 정사를 맡겼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