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로왕 때에 도미라는 백성이 있었습니다. 그는 매우 의리가 있는 사람이었으며, 그의 아내 아랑 역시 행실이 바르고 매우 아름다워 주변 사람들로부터 칭찬이 자자했습니다.

어느 날 아랑의 소문을 들은 개로왕은 도미를 불러 말하였습니다.
 “내가 듣건대 너의 처가 얼굴도 예쁘고 행실도 얌전하다고 들었다. 그러나 사람이 없는 곳에서 부드러운 말로 꾀면 마음이 쉽게 움직일 것이다. 너는 어찌 생각하느냐?”
 “다른 여자는 그러할지 몰라도 제 아내만은 비록 죽는다 하더라도 변함없을 것이옵니다.”                             도미는 망설임 없이 대답하였습니다.

결국 개로왕은 도미 아내의 정절을 시험해 보기 위하여 도미를 궁궐에 남아 있게 한 후 근신 한 명을 왕으로 가장시켜 왕의 의복을 입히고 말을 태워 도미의 집으로 보내었습니다.  가짜 왕은 도미의 부인에게 말했습니다.
 “그대가 아름답다는 소문은 많이 들었다. 내 너를 흠모해 오던 중 남편 도미와 함께 그대를 두고 바둑 내기를 두었는데, 내가 이겨 너를 오늘 밤 이후부터 후궁으로 삼기로 했다. 너는 이제 나의 것이다.”
아랑은 너무 놀랐으나 내색을 하지 않고,  
 “임금님께서는 농담이 없으신 법인데 제가 어찌 감히 순종하지 않겠습니까. 임금님께서 먼저 방에 들어가 계시오면 제가 옷을 갈아입고 나오겠습니다.”
라고 말한 뒤 물러 나와서 자신의 계집종을 불렀습니다.
 “나는 지아비가 있는 몸이니 네가 나를 대신하여 모시도록 해라.”
하고는 계집종을 곱게 단장시켜서 가짜 왕의 방으로 들여보내었습니다. 깜깜한 밤인지라 그 날 밤은 무사히 지나갔습니다. 그러나 뒤늦게 이 사실을 알게 된 개루왕은 화가 나서 도미에게 억울한 누명을 씌워서 그의 두 눈을 빼버렸습니다. 그리고 부하를 시켜서 그를 조그만 배에 실어서 강물에 띄웠습니다. 그런 뒤 도미의 부인 아랑을 불러 강제로 범하려고 하였습니다.  
“지금 남편을 잃어 혼자 살아갈 일이 막막한데, 왕을 모시게 되었으니, 어찌 감히 명령을 어기겠습니까. 지금은 몸이 더러우니 목욕을 하고 임금님을 모시겠습니다.”
왕은 이 말을 믿고 허락하였습니다. 아랑은 그 길로 도망하여 강가에 이르렀으나, 배가 없어 건너가지 못하고 그저 하늘만 우러러 보면서 통곡하였습니다. 그러자 어디서 돌연 조각배 하나가 나타나서 물결에 흔들리며 떠내려 오는 것이었습니다.  아랑은 그 배를 잡아타고 곧 배가 떠가는 대로 몸을 맡기었습니다. 어느덧 그 배는 천성도라는 섬에 이르렀습니다. 거기에서 그녀는 꿈에도 그리던 남편을 만났습니다. 
“여보, 당신 살아 있었구려.”
 “아니, 이게 누구 목소리요. 당신이 정녕 내 아내란 말이오.”

두 사람은 서로 껴안고 눈물을 흘렸습니다. 아랑은 도미를 정성껏 돌보며, 풀뿌리와 나무껍질로 끼니를 이으면서 살아갔습니다. 그러다가  둘은 함께 배를 타고 고구려 땅으로 도망갔습니다. 고구려 백성들은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은 후 불쌍히 생각하여 음식과 옷을 주어 살게 하였습니다. 두 눈을 잃은 도미와 아랑은 그곳에서 가난했지만 일생을 행복하게 살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