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 10대 왕인 산상왕은 자신의 형제들과 피 흘리는 싸움 끝에 겨우 왕위에 오른 사람입니다. 그래서 그는 형제가 아닌 자식에게 왕위를 넘겨주고 싶었습니다. 하지만 산상왕과 그의 아내인 우씨 사이에 자식이 없었습니다. 왕은 매일같이 높은 산에 올라가 아들을 낳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를 올렸습니다.

어느 날 밤, 산상왕의 꿈속에서 백발을 한 산신령이 나타났습니다.

  "소후(둘째 아내)를 얻으면 그녀에게서 아들을 낳게 될 것이다. 너무 걱정하지 말아라."

잠에서 깬 산상왕은 기이하게 여기며, 그 때를 기다렸습니다.

산상왕 12년(208년) 겨울, 교제(제사)에 쓸 돼지가 달아나는 일이 일어났습니다. 그 돼지를 잡기 위해 많은 신하들이 쫓았으나 돼지는 어찌나 빠르게 도망가는지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신하들은 죽을 힘을 다하여 쫓아가다가 어느덧 주통촌이라는 마을에 이르렀습니다.

  "달아나는 돼지를 잡아라!"

소리치며 돼지를 쫓았으나 돼지는 용케 피하며 이리저리 내달렸습니다.

그러자 그 소란스러움에 무슨 일인가 하여 그 마을에 살던 처녀가 한 명 나왔습니다.

  "무슨 일입니까?"

  "제사에 쓸 돼지가 달아났다. 지금 쫓고 있는데 어찌나 빠른지 잡을 수가 없구나."

  "그래요. 제가 한번 잡아볼게요."

처녀는 돼지를 쫓았습니다. 번개처럼 달리더니 미리 가서 기다렸다가 돼지를 붙잡았습니다. 신하는 처녀가 너무나 힘이 센 것에 놀랐습니다. 처녀는 또한 아름다운 미모를 갖추고 있었습니다. 신하는 그 날 저녁 지금까지 있었던 일을 왕에게 모두 말해 주었습니다. 산상왕은 그 처녀를 보고 싶어, 그 날 밤으로 신하를 데리고 그 처녀의 집을 찾아갔습니다.

  "네 이름이 뭐라고 하였지?"

  "후녀라고 하옵니다."

  "후녀라니? 뭔가 사연이 있는 것 같구나."

후녀는 자신이 태어나게 된 내력을 조용히 이야기하기 시작했습니다.

  "저의 부모님은 결혼하고 몇 년이 지나도록 아이가 없었다고 하옵니다. 그래서 어머님이 아이를 갖게 해달라고 정성껏 비셨대요. 그 날 꿈을 꾸셨는데 하늘에서 선녀가 내려오더니 어머님 품속으로 들어가셨대요. 그리고 저를 임신하셨지요. 점쟁이가 딸을 낳으면 틀림없이 왕후가 될 것이라며 이름을 후녀라고 지으라고 하였답니다."

왕은 그 처녀와 하룻밤을 지내고는 은밀히 궁궐로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산상왕이 주통촌 처녀를 만나고 갔다는 소문이 서서히 퍼지기 시작하면서, 왕후의 귀에도 들어갔습니다. 왕후 우씨는 분을 참지 못하고 노하여 처녀를 죽여야겠다고 마음을 먹었습니다. 그 날 밤, 왕후는 심복 장수와 병사 몇 명을 주통촌으로 보내었습니다. 그 시간 후녀는 잠을 자고 있다가 벌떡 일어났습니다.

  "꿈에 백발 노인이 나타나 빨리 피하라고 했어요."

후녀의 어머니는 눈물을 흘리며 말했습니다.

  "이게 무슨 일이냐? 네가 뭘 잘못했다고 이런 일을 당한단 말이냐?"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 아기 때문에 몸을 조심하기 위해서 피하는 거예요."

  후녀는 남장을 하고 죽을 힘을 다해 도망쳤으나 잡히고 말았습니다. 후녀는 병사들에게 말하였습니다.

  "나를 죽이려는 게 왕의 명령이냐? 아니면 왕후의 명령이냐? 나는 죽어도 좋다. 하지만 나의 몸에는 왕자가 자라고 있다. 나를 죽이면 왕자도 죽는 것이니 그 죄가 클 것이다."

후녀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차마 후녀를 죽일 수가 없어서 그냥 돌아왔습니다. 아기를 가진 사실을 안 산상왕은 직접 주통촌으로 달려가 후녀를 만났습니다. 왕은 자기의 아이임을 확인하고 돌아와 기뻐하며 왕후에게 말했습니다.

  "주통촌의 처녀가 만일 아들을 낳으면 왕후의 아들로 하리다."

그 해 9월 후녀는 아들을 낳았습니다. 산상왕은 기뻐하며 후녀를 소후로 봉하고 아이에게는 교체라는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교체는 교제(제사)에 쓸 돼지를 잡으려다 알게 되어 낳은 아이라는 뜻이었습니다. 이 분이 바로 산상왕의 뒤를 이은 동천왕이라고 합니다. 동천왕은 너그러움과 덕행으로 신하들과 백성들로부터 존경을 받았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