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종의 뒤를 이어 세자 융이 왕위에 오르니, 이가 곧 연산군 이었습니다. 세자 융은 어릴 때부터 어머니 곁을 떠나서 강희맹의 집에 들어가 자랐습니다. 때문에 폐비 윤씨가 자기를 낳았다는 사실조차 몰랐습니다. 세자는 어릴 때부터 심성이 바르지 못하고 갖가지 문제를 일으켰습니다.
 
성종이 어느 날 세자를 불러놓고 임금의 도리에 대해 가르치려 할 때였습니다. 부왕의 부름을 받고 온 융이 성종에게 다가가려 할 때 난데없이 사슴 한 마리가 달려들어 그의 옷과 손등을 핥아댔습니다. 그 사슴은 성종이 몹시 아끼던 애완동물이었습니다. 하지만 융은 사슴이 자신의 옷을 더럽힌 것에 격분한 나머지 부왕이 보는 앞에서 사슴을 발길로 걷어찼습니다. 이 광경을 지켜보던 성종은 몹시 화가 나서 융을 엄하게 꾸짖었습니다.
 이 일에 앙심을 품었던 세자 융은 성종이 죽자 왕으로 등극하여, 가장 먼저 한 일이 그 사슴을 활로 죽여 버린 것이었습니다.
 
이렇게 어린 시절부터 비뚤어진 성격으로 자랐던 연산군은 왕으로 등극하면서 자신의 내면에 숨겨져 있던 광폭한 성격을 어김없이 표출하기 시작했습니다.
 

1498년, 연산군은 사관들에게 실록을 편찬하도록 명하였습니다. 원래 한 임금이 세상을 떠나면 다음 임금이 선왕의 역사적 사실을 편찬하게 되어 있는데, 이것을 ‘실록’이라고 합니다. 연산군 때에는 <성종실록>을 편찬해야 했습니다.  이극돈이라는 자가 실록청의 책임자로 임명되었습니다. 어느 날 이극돈은 사관 김일손이 제출한 사초를 점검하다가 김종직이 자신을 비판한 상소문과 김종직의 조의제문이 실려 있음을 발견하였습니다. 이극돈은 전라감사로 있을 때 세조 비 정희왕후의 상중에 근신하지 않고 장흥의 기생과 어울렸다 하여 김종직으로부터 탄핵상소를 받은 일이 있었습니다. 그 때의 상소문이 김일손의 사초에 실려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이극돈은 곧바로 유자광에게로 갔습니다. 유자광 역시 김종직을 원수로 여기고 있던 차였습니다. 김종직은 함양에 부임해서, 당시 함양 관청에 붙어 있는 유자광의 글을 불태운 일이 있었습니다. 게다가 김종직은 유자광이 남이를 모함하여 죽인 모리배라면서 멸시했습니다.
 
이극돈과 유자광은 이번 기회를 빌어 김종직을 중심으로 성장하고 있는 신진사림을 모두 제거하기로 작정하였습니다. 그 빌미로서 김일손의 사초에 실린 김종직의 ‘조의제문’을 이용했습니다. 조의제문은 의제를 애도하는 제문의 형식을 빌려, 초나라의 항우가 자신의 왕인 의제를 폐한 일을 비판한 글이었습니다. 이는 곧 세조의 단종 폐위를 빗댄 것으로서 세조의 왕위 찬탈을 비판한 글이었습니다.

유자광은 세조의 신임을 받았던 노사신, 윤필상 등의 훈구세력과 의논한 뒤에 연산군에게 상소문을 올렸습니다. 조의제문이 세조를 비방한 글이므로 김종직은 대역무도한 행위를 했고 이를 사초에 실은 김일손 역시 대역을 범했다는 논리였습니다.

그렇지 않아도 연산군은 사림 세력을 싫어하던 차였습니다. 그래서 즉시 김일손을 문초하게 하였습니다. ‘조의제문'을 사초에 실은 것이 김종직의 지시에 의한 것이라는 결론을 얻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리고 의도하던 바대로 진술을 받아낸 연산군은 김일손을 위시한 모든 김종직 문하를 제거하기 시작했습니다.   우선 이미 죽은 김종직에게는 무덤을 파서 관을 꺼낸 다음 시신을 다시 한 번 죽이는 부관참시 형이 가해졌으며, 김일손, 권오복, 권경유, 이목, 허반 등은 세조를 능멸하였다는 이유로 능지처참 등의 형벌을 내렸고, 같은 죄에 걸린 강겸은 곤장 100대에 가산을 몰수하고 변경의 관노로 삼았습니다. 한편 어세겸, 이극돈, 유순, 윤효손, 김전 등은 수사관(실록 자료인 사초를 관장하는 관리)으로서 문제의 사초를 보고하지 않은 죄로 파면되었으며, 홍귀달, 조익정, 허침, 안침 등도 같은 죄로 좌천(지위가 낮아지는) 되었습니다.

이 사건으로 대부분의 신진 사림이 죽거나 유배당하고 이극돈까지 파면되었지만, 유자광 만은 연산군의 신임을 받아 조정의 대세를 장악하였습니다.

이렇게 사초가 원인이 되어 무오년에 사림들이 대대적인 화를 입은 사건이라 해서 이를 ‘무오사화’라고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