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릴적 할머니께서 해주시던 옛날이야기 중에는 간혹 제비가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제비에 관한 이야기가 나올 때면 할머니는 항상 제비는 강남으로 날아간다도 하셨습니다. 이처럼 제비는 봄부터 여름까지 우리곁에 지내며 날이 추워지는 가을이 되면 남쪽나라(적도부근의 동남아시아)로 날아가는 대표적인 철새입니다.  제비꽃은 이름에서 나타나듯 제비와 모습이나 색깔이 비슷하다고 하여 이름이 붙여졌다고 합니다. 그리고 우리 주위에 나타나는 시기도 비슷하여 사람들은 제비가 씨를 물어와 제비꽃을 피운다고 믿었습니다.

제비꽃은 쌍떡잎식물 측막태좌목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로 우리나라를 비롯해 중국, 일본, 시베리아 동부 지역에 분포되어 있습니다. 주로 들이나 언덕위에 자생하고 있으며, 우리나라에만 변종을 포함해 약 30여가지의 종류가 있다고 합니다.

예로부터 제비꽃은 여러가지 종류 만큼 그 이름도 각지방마다 제각각이었다고 합니다. 어린아이들이 꽃잎을 서로 엮은 후 당기는 놀이로 사용했다하여 씨름꽃, 장수꽃, 제비꽃이 필 때쯤이면 양식이 떨어진 오랑캐(모든 외세 침입자를 일컬음)들이 북쪽에서 내려온다고 해서 오랑캐꽃, 앉은뱅이꽃이라고 불러왔습니다.

4~5월이되면 잎사이에서 꽃줄기가 자라 끝에 한개씩 해를 향해 달리는 모습을 하고 있습니다. 짙은 붉은빛을 띤 자주색을 가지고 있으며 열매는 삭과로 6월에 맺는다고 합니다.

오래전부터 제비꽃의 어린 순은 나물로 먹었으며 풀 전체는 해독·소염·소종·지사·최토·이뇨 등의 효능이 있어 황달·간염·수종 등에 쓰여 왔습니다. 유럽에서는 아테네를 상징하는 꽃으로 널리 사용되었으며 로마시대에는 장미와 더불어 일반인들도 손쉽게 접할 수 있도록 흔하게 심어졌습니다. 그리스도교 시대에는 장미·백합과 함께 성모께 바치게 되었는데 장미는 아름다움을 나타내고 백합은 위엄을 나타내며 제비꽃은 성실과 겸손을 나타낸다고 합니다.
 

꽃에 얽힌 이야기

그리스 신화를 보면 역시 제비꽃과 관련된 이야기가 전해져 옵니다. 아마도 신들은 꽃을 무척이나 사랑했나 봅니다.

옛날 어느 날이었습니다. 나른하고도 평안한 한때를 보내고 있던 헤라는 갑자기 불길한 예감을 감지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화창한 날이 갑자기 어두움이 뒤덥힌 날로 바뀌는 것에 대한 불길함이었습니다. 그것은 필시 남편인 제우스가 세상에 알려지기를 꺼리는 소행을 저지르고서 그것을 감추려고 구름을 일으킨 까닭이라고 생각하였습니다.

헤라가 구름을 헤치고 보니 남편은 거울같이 잔잔한 강기슭에 있었고, 그 곁에 한 마리의 아름다운 송아지가 서 있었습니다. 이 암송아지는 헤라를 두려워하여 제우스가 이오(강의 신 이나코스와 멜리아 사이에서 태어난 딸)를 변신시킨 것이었습니다. (이유는 굳이 설명하지 않아도 '천하의 바람둥이 제우스'라는 말이면 이해하실거라고 믿습니다.)

꾀가 생긴 헤라는 제우스에게 이 암송아지를 자기에게 선물하라고 간청하게 됩니다. 안된다고 완강히 거부하던 제우스는 헤라가 무서웠는지 결국에는 승락을 하고 맙니다. 그러나 헤라는 아직 의심을 풀지 못하였으므로 송아지를 아르고스(Argos)에게 인도하여 엄중히 감시하게 하였습니다.

아르고스는 머리에 백 개의 눈을 가지고 있는 자였습니다. 그리고 잘 때에는 언제나 동시에 두 개 이상의 눈을 감지 않았으므로 이오를 잘 감시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하였습니다.

제우스는 자기 애인의 이러한 고통을 알고 괴로워하였습니다. 그리하여 헤르메스로 하여금 아르고스를 퇴치하도록 명령하였습니다. 그 즉시 실행에 옮긴 헤르메스는 아름다운 음악으로 아르고스를 잠재우고 이오를 구출하는데 성공하였습니다.

그러자 헤라의 복수심은 더욱더 불타올랐습니다. 그녀는 이오를 괴롭히기 위하여 한 마리의 등에를 보냈습니다. 등에는 이오를 추적하며 온 세계를 날아다녔습니다. 자신이 감시 당하고 있다는 것을 안 이오는 감시를 피하기 위해 이오니아 해를 헤엄쳐 도망치려 하였습니다. 헤엄을 치다 이오는 힘이 빠져 점점 죽음에 가까워졌습니다. 그러나 이오는 아름다운 영혼을 가진 여인이기에 죽어서도 별이 되었습니다. 이오의 죽음을 안타까워한 제우스는 이오를 향한 그리움에 이오의 아름다운 눈을 생각하고 제비꽃을 만들었다고 합니다.

알아보기

♤ 과명 : 제비꽃과의 여러해살이풀
♤ 학명 : Viola mandshurion
♤ 별명 : 오랑캐꽃, 바이올렛
♤ 개화기 :  4-5월
♤ 꽃색 : 연보라색
♤ 꽃말 : 성실, 겸손, 사랑

꽃과 관련된 문학작품

제비꽃 연가-이해인

나를 받아 주십시오
헤프지 않은 나의 웃음
아껴 둔 나의 향기
모두 당신의 것입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나는 겨우 고개를 들어
웃을 수 있고
감추어진 향기도
향기인 것을 압니다

당신이 가까이 오셔야
내 작은 가슴 속엔
하늘이 출렁일 수 있고
내가 앉은 이 세상은
아름다운 집이 됩니다

담담한 세월을
뜨겁게 안고 사는 나는
가장 작은 꽃이지만
가장 큰 기쁨을 키워 드리는
사랑꽃이 되겠습니다

당신의 삶을
온통 봄빛으로 채우기 위해
어둠 밑으로 뿌리내린 나
비오는 날에도 노래를 멈추지 않는
작은 시인이 되겠습니다

나를 받아 주십시오


제비꽃에 대하여-안도현

제비꽃을 알아도 봄은 오고
제비꽃을 몰라도 봄은 간다

제비꽃에 대해 알기 위해서
따로 책을 뒤적여 공부할 필요는 없지

연인과 들길을 걸을 때 잊지 않는다면
발견할 수 있을 거야

그래, 허리를 낮출 줄 아는 사람에게만
보이는 거야 자줏빛이지

자줏빛을 톡 한번 건드려봐
흔들리지? 그건 관심이 있다는 뜻이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사랑이란 그런 거야

봄은,
제비꽃을 모르는 사람을 기억하지 않지만

제비꽃을 아는 사람 앞으로는
그냥 가는 법이 없단다

그 사람 앞에는
제비꽃 한포기를 피워두고 가거든

참 이상하지?
해마다 잊지 않고 피워두고 가거든

제비꽃 곁에서-김선광

나의 사랑은 들꽃과 같았으면 좋겠다.
자주자주 새로운 아침과 저녁을 맞이하면서
곱게 지는 법을 아는 풀꽃이었으면 좋겠다.
긴 사랑의 끝이 오히려 남루할 때가 있나니
키 낮은 풀꽃 뒤에 숨길 수 없는 큰 몸을 하고

파란 입술의 제비꽃아.
나는 얼마를 더 부끄러워하면 되겠느냐.
내 탐욕의 발목을 주저앉히는 바람이 일어
깊이 허리 눕히는 풀잎 곁에서
내 쓰러졌다가 허심의 몸으로 일어서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