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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수작품

제목 나의 삶은 나의 것인가
작성자 강희진 작성일 2018-09-21
작성일 2018-09-21

한때 나는 내 인생이 내 것이라고만 생각했다. 내가 원하고 바라는 대로 살 수 있으며, 오로지 나의 생각과 의지와 판단에 따라 사는 것이 가능하고, 또 당연한 것이라 생각했었다. 이 세상에 태어나 나의 뜻을 펼치고 자유로이 살 수 있다는 것. 이 얼마나 멋진 일인가. 이 명제에 대해 나는 한 치의 의심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시간이 흐르고, 나이의 무게를 조금씩 느끼기 시작할 무렵 마음속에 조그마한 의심의 싹이 자라기 시작했다. 내가 지금 잘못 생각하고 있는 것이라고, 그렇게 나만 생각하고 사는 건 이기적인 일이라는 생각이 스멀스멀 나를 감쌌다.

나는 십대 때 사춘기를 겪지 않았다. 우리 가족, 학창시절 담임선생님들은 이 말을 들으면 뭐라고 생각하실지 모르겠지만, 적어도 내가 생각하기엔 그렇다. 하지만 늦바람이 더 무섭다는 말도 있지 않던가. 나는 성인이 되고 그제서야 혹독하게 사춘기를 겪었다. 하고 싶은 일이 있었다. 무언가에 깊게 빠져본 적이 없던 나인데, 그 일이 꼭 해보고 싶었다. 그래서 나름대로 계획도 세우고 혼자 헤쳐 나가 보려고 노력도 해보았다. 그런데 안 된다는 것이다. 그러면 안 된다고 했었다. 나의 삶은 그 누구도 아닌 나의 것인데 왜 내가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하고 제지 당해야 하는지, 어째서 나의 의지는 자꾸 꺾여야 하는 것인지, 무엇 때문에 나는 나를 끝까지 내세우지 못하는 것 인지와 같은 의문이 꼬리에 꼬리를 물고 나를 따라다녔다. 그 당시에는 정말 마음이 애달팠다.

하지만 아팠던 만큼 시간이 지난 지금, 어느 정도는 알 것 같다. 왜 나는 나만 생각하며 살 수가 없는지를 말이다. 시간이 약이라는 옛말이 정말 맞기는 한가 보다. 내가 지금 이 자리에 서있을 수 있는 까닭은 나에게 소중하고 의미 있는 사람들 덕분이다. 그들 덕에 나는 무탈하게 성장할 수 있었고 행복한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었다. 그러니까 나는 나만 생각해서는 안 되는 것이었다. 바보같이 나는 나 혼자서 잘 큰 사람이고, 뭐든 스스로 이루어낸 사람이라고 믿었다. 그리고 여기서부터 딜레마가 시작되었다. 나의 욕구만을 생각하는 것은 안 되지만, 그렇다고 해서 무조건 그들의 의견을 따르는 건 영 내키지 않았다. 나의 욕구를 포기하는 것은 너무나 싫지만 그들의 감사한 마음을 저버리는 것도 싫었다. 누구를 우선순위에 두어야할지, 나와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누구를 우선순위에 두어야 할지, 나와 그들 사이에서 어떻게 균형을 잡아야 할지 도통 감이 잡히지 않았다. 그래서 이때부터 였던가 나는 가벼운 무기력증을 앓았던 것 같다.

지금은 그 무기력증이 많이 나아지긴 했지만, 아직도 그 여파가 지속되고 있다. 이렇게 살아가던 중 우연히 수강한 강의에서 유시민 작가의 『어떻게 살 것인가』를 읽었다. 그리고 책 속에서 나와 같은 고민을 한 것으로 보이는 작가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 책의 소주제로 나와 있었다. 이 문구를 보는 순간 반가웠고 한편으로는 놀라웠다. 대한민국에서 이름 석 자를 대면 모르는 사람보다 아는 사람이 더 많은 그가, 똑똑하고 부족한 것 하나 없어 보이는 그도 나와 같은 고민을 하는 구나 하는 생각에 말이다. 유명하든 그렇지 않든, 똑똑하든 그렇지 않든 간에 인간의 근원적 고민은 동일한 걸까 하는 생각도 함께했다.

책에 보면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 일이라는 말이 나온다. 이때의 자기 결정권이란 스스로 설계한 삶을 옳다고 믿는 방식으로 살아가려는 의지이며 권리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그토록 중요한 자기 결정권을 행사하는데 너무나도 많이 망설이고 있다. 그러다 문득 떠오른 생각이 있다. 나는 용기가 없는 사람이 아닐까? 내가 설계한 삶이 옳다고 생각했으면, 그것을 실현하기 위해 아픔도 감수할 줄 알아야 하는데, 나는 아프니까 더 이상 하고 싶지 않다며 무력하게 돌아섰던 것은 아닐까? 힘들더라도 노력해서 그들을 설득하고 내편으로 만들려는 의지가 없었던 것은 아닐까? 나는 결국 말만 번지르르하고 실천은 하지 않는 그런 사람인걸까? 나를 돌아볼 줄은 모르고 괜히 다른 사람 탓만 하며 허송세월을 보낸 것은 아닐까? 모든 것이 핑계였던 건가? 또 다시 나를 향해 한가득 날선 질문들이 시작되었다. 역시 나는 이런 사람이었구나, 이 정도의 사람이구나, 모든 것이 나의 탓이었구나라는 답변이 돌아왔다. 여태까지 나라고 생각했던 진짜 나는 내가 아니었던 것 같았다. 진짜 민낯은 따로 있는데 나를 예쁘게 꾸미고 화장한 사람이라고 오해하고 살았던 듯한 느낌이었다. 나의 민낯을 그것도 적나라하게 들킨 것 같아 나 자신에게 답을 하는 내내 부끄러웠다. 이렇게 다시 한번 나는 뜻하지 않는 가벼운 성장통을 겪게 되었다.

그러나 이번에는 더 이상 무기력해지지 않을 것이다. 용기를 내보려 한다.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모르겠다고, 나와 그들 사이에서 균형을 잡지 못하겠다고 푸념만 늘어놓을 것이 아니라 하고 싶은 일이 있다면, 끝까지 밀어붙여 보려 한다. 괜히 겁먹고 체념하는 일을 또다시 만들진 않을 것이다. 물론 쉽지않겠지만, 그 과정에서 또 나에게 많은 실망과 낙담이 나를 기다리고 있겠지만 개의치 않고 앞으로 걸어갈 것이다. 용기 있는 내가 되기를 진심으로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