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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영화감상문

제목 유혹의 학교를 읽고- 유혹의 경험
글쓴이 강유미
스물 두 살이 되고 부터, 세상은 유혹으로 돌아간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비단 연인 사이부터 가까이는 가족까지 끊임없이 서로를 유혹하면서 둥글게 굴러가고 있다고, 이건 아주 간단명료한 법칙이었다. 아빠와 엄마는 마음을 담보로 평생을 기약했고, 절친한 친구와 나는 서로의 이야기에 매력적인 리액션을 보여주며 즐거움을 약속했다. 유혹하지 못하면 나아가지 못한다.
이서희 씨의 에세이 유혹의 학교는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추천 받은 책이다. 우리는 다른 사람에게서 유혹하는 법을 배우기도 하고, 유혹을 하면서 다른 사람의 인생에 자국을 남기기도 한다. 유혹이 달콤한 사탕을 삼키는 것처럼 행복한 맛만 느껴졌다면 망설임은 시간의 사치였겠지만, 모두 겪어서 알고 있듯이 원하는 사람과 원하는 관계로 지낼 수만은 없다. ‘우리는 관계 속에서 자신이 맡은 역할에 비통해지기도 한다. 트랙이 어긋나는 순간은 상대에게 과하게 잘 보이려 할 때, 과장된 자기방어 기제가 도드라질 때 자주 일어난다. 거부당할까 두려워 제3자를 향한 관심으로 가장하기도 하고 평소보다 쿨하고 무심한 사람인 척 굴기도 한다. 이 모든 것은 만남의 중심에 자신이 원하는 바를 지나치게 투영해서 벌어지는 일이다.’ 내가 오로지 진심이라고 해서 상대방에게도 똑같은 선물을 요구하지 못한다. 미인을 차지하려면 용기 있는 자가 되라고 하지만, 용기를 내지 못하는 이유는 미인은 적절한 방법으로 유혹할 자신이 없기 때문이다. 비참함은 이럴 때에 갑작스러운 소나기처럼 찾아온다. 나는 용기 있는 자가 되어도 미인을 차지할 방법은 찾지 못했기 때문이다.
때론, 나를 유혹하려고 한 의도가 아니었는데도 존재 자체가 매력인 다른 사람의 덫에 걸리기도 한다. 존재 자체가 매력인 다른 사람은 호기심이 없는 사람도 몸집만한 돋보기를 들고 관찰하는 파브르가 되게 만든다. 그 사람이 친한 사람, 즐기는 취미는 무엇인지, 어떤 사람을 만났는지 무엇이 오늘의 당신을 만들었는지 정말로 궁금해진다. 하지만 나는 매력적인 사람에게 성큼 다가가지 못하는 깡통 로봇이었다. 마음만큼은 가까운 자리에서 두 손을 모아 그 사람의 언어를 담고 있었지만. 왜였을까 고민하기도 잠시 책의 어떠한 부분을 읽고, 나는 정의 내려진 기분이 들었다. ‘나는 누군가의 열렬한 사랑을 받는 것으로 나의 가치가 결정된다고 믿는다.’ 라는 정의였다. 한 마리의 깡통 로봇은 누군가에게 열렬한 사랑을 받아야만 나의 가치가 올라갈 수 있다고 믿었던 거다. 그래서 나는 상대가 나에게 이만큼의 사랑을 준다는 것을 다른 사람에게 자랑하고 싶었고 그걸로 내가 매력적인 존재라는 걸 증명할 수 있길 기다렸다. 거절당했던 기억이 트라우마처럼 남아서 그 기억을 일방적인 사랑으로 메꾸고 싶어 하는 거다.
이서희 씨는 ‘유혹은 모든 반응에 일희일비하지 않아야 한다. 유혹의 이야기는 서서히 진행되기도 한다.’ 라고 하며 성숙하고 여유로운 자세를 유지할 것을 말했다. 조급함은 유혹의 미덕이 될 수 없다. ‘유혹은 새로운 세계를 보여주고 그곳으로 문을 여는 초대의 행위이나, 당신을 구원하거나 그 세계에 영원토록 머물게 하겠다는 약속은 아니다. 유혹은 관계의 적정 지점을 함께 찾아가는 일이다.’ 성숙하고 여유롭다고 해서 새로운 세계에 들어갈 수 있다는 것은 아니니, 관계의 경계에서 충분히 관찰해야 한다. 나는 요새 사람들을 관찰하는 것에 집중하고 있다. 무슨 말로 대화를 건네는지, 어떤 리액션으로 유혹에 보답하는지, 거대한 유혹의 학교에서 학생의 자세로 배우고 있다. 상처가 한 번에 치유될 수는 없어서 극복의 기간이 필요하다. 그래서 소극적인 자세로 날 매력적인 존재로 만들어줄 사람을 기다리지만, 기회가 온다면 얼마든지 그 유혹에 보답할 수 있고 싶다. 나에게 유혹을 가르쳐줄 선생님이 운명처럼 때론 기적처럼, 나의 세계에 들어오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