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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외출다운 외출
글쓴이 이승미

  모처럼 외출을 하였다. 그냥 장보기나 일처리가 아니라 산책도 하고 카페에서 이야기도 나누는 외출다운 외출말이다. 낯선 분들과 함께 책을 매개로 여러 이야기를 나눠보자고 하는데 평소에 책을 많이 접하지 않기도 했고, 또 안면 없는 사람끼리 무슨 얘기를 나눌 수 있을까 싶기도 하였다. 그런데 가면 참석할수록 신청하길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부드러운 차향과 평온하게 드러누운 고양이가 있는 카페에 모여 앉으니 우리는 어느새 익숙하지 않은 책을 읽고도 이야기가 조금씩 풀려나갔다. 특히 서먹할 때 마음을 열어 준 책은 여덟 단어이다. 인생을 대하는 자세에 대한 단어 여덟 가지를 엮어놓은 책으로 자존, 본질, 고전, , 현재, 권위, 소통, 인생이라는 단어가 결국 하나의 방향을 향하여 생각하게 하는 책이다. 하지만 우리는 각자의 인생에 대하여 떠오르는 단어가 따로 있었다

나는 '사랑'이란 것에 대해 생각해보았다. 나의 에너지 이상으로 일상을 살아왔던 것이 힘들었는데 이제는 거절할 수 있는 용기를 갖게 된 나를 바라보게 되었다. 이렇게 하기까지 많은 망설임과 시간이 소요되었지만 나를 더 사랑할 수 있는 전환점이 되었다. 이젠 만족하는 나를 대하고 있음도 인식할 수 있었다. 함께 대화를 나누기만 했는데 나의 삶을 한 꼭지 정돈하게 되는 걸 경험하니 ‘SOME타는 책읽기에 참여한 분들에 대한 친밀함이 밀려왔다. 참여한 다른 분은 '자존감'이 자신의 장점이자 단점이라고 이야기를 열었다. 자신과 가족의 단점을 고치려고 노력하며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그것이 너무 힘들게 느껴지더라는 것이다. 이젠 그러한 부족함조차 자신의 일부로 받아들이자고 다짐하며 비로소 자존감을 세워가는 중이라고 하였다. 나도 자존감에 대하여 돌이켜보게 되었는데 그것은 다른 사람의 평가에 연연하는 것이 아니라 나의 나에 대한 인정과 보듬음이라고 생각되었다. 자존감에 대한 각자의 이야기를 하다 보니 어느새 다른 분의 어릴 적 할머니 칠순 잔치 이야기도 듣게 되었다. 그 분이 자기를 얼마나 많이 잃고 사는 지, 그리고 회복하고 싶어하는 지에 대하여 깨닫고 있다는 것도 느끼게 되었다. 우리는 서로 위로해주고 싶은 마음이 많았고 격려해주고 싶은 이야기도 다양하였다. 그리고 책의 도움을 조금 더 받기로 하였다.

표지에는 여덟 단어라는 글자가 세로로 인쇄되어있고 그 글에 모자를 씌우고 신발도 놓아두었다. ‘우리의 인생이 이 여덟 단어를 채움으로서 사람다워지지 않을까..’하는 작가의 마음이 느껴진다. 뒷면을 보니 이 단어는 단지 참고 사항일 뿐이니 나에 대한 존중을 절대 잃지 말기를 당부하는 글도 남겨놓았다. 작가는 광고 크리에이티브인데 읽을수록 전달력이 좋다고 느껴졌다. 직업에 맞게 굉장히 간결한 문체로 호소력 짙게 전달하는 능력을 가진 것 같다. 그는 고전을 가까이 하라고 권하는데 자녀와 함께 클래식 음악을 들으며 조용히 감동했던 시간이나 미술관에서 감상했던 작품들에 대한 감동이 지금 창작하는 작품에 굉장한 도움이 된다는 것이다. 사람들마다 고전의 중요성에 대하여 의견이 다르겠지만 세월을 이겨낸 고전에는 본질적인 것이 담겨있으므로 지금의 창작물에 깃들여 여전히 가치를 뿜어낸다고 한다. 굉장히 창의적이라는 작가의 광고 작품도 발상의 근원은 고전을 통한 본질에서 가져오는 경우가 많다고 한다. 고전 작품을 대하면 인간의 삶의 겉모습은 변한 듯 하나 사실은 이전의 누군가가 살았던 삶이며 방식이라는 점에 동의한다. 세월의 속도를 쫓기 버거울 때 오히려 고전으로 돌아가 본질을 이해하는 것은 꼭 필요하다고 생각한다.

누구나 나이 40즈음 되면 여러 유혹이 있고, 자신의 삶에 대한 불안이나 부정이 많다. 작가도 다른 모든 삶이 멋져 보여 이렇게 사는 삶이 맞는 건가싶었다고 하는데 불현 듯 나도 괜찮아. 나이 40에 아파트에서 딸 하나 키우면서 사는 게 답이 아니라고 누가 그랬어?’라는 생각을 하며 자기의 현재에 대한 존중이 생겼다고 한다. 그것은 그가 현재에 집중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이다. 어제와 오늘을 후회하거나 근심하지 않는 개처럼 열심히 먹고 자고 일할 것을 권하고 있다. 이렇게 시원스럽게 삶을 살 수 있다니 부럽기도 하고, 나도 은근히 내 나이에 이렇게 사는 것이 답이 아니라고 누가 그랬어?’라는 생각도 든다. 나는 온전히 나에게 집중하기 보다는 두루 다른 사람의 필요를 채우는 역할을 하고 있다. 현재의 내가 열심히 해내야 하는 삶이 이런 형태니까 지금은 이것에 집중하고 있는 것이다. 그렇지만 왠지 아쉬움이 남는다. 나에게 좀 더 집중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것이 더 솔직한 마음인 것 같다. 무조건적인 긍정으로 미래를 낙관하는 것이 내게는 참 어렵다. 작가의 딸은 아빠가 자기의 방에 들어오는 걸 언제든 환영했다고 했는데 그건 아빠가 참 재미있기 때문이라고 한다. 자신의 삶을 집중해서 사는 사람은 다른 사람들에게도 쾌활한 메시지를 전달하며 사는 것 같다. 작가처럼 나도 쾌활하게 나에게 집중하며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