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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애착 인형
글쓴이 강유미
라디오 스타에서 설현이 “담요를 입술에 비비고 자야 잠이 온다.” 라고 했다. 아장아장 애기 때부터 끼고 살던 애착 담요다. 애착 물건은 낡고 닳았어도 없어지면 슬픈 물건 제 1호다.
나는 ‘보들이’ 라는 연한 황토색의 강아지 인형이 애착 인형이 있다. 성별은 여자이고 성은 아빠 성을 따서 강 보들 이다. 원래는 작은 고사리 손에 잡힐 정도로 목이 가늘었는데 엄마의 대수술으로 빵빵한 솜을 가지게 되었다.
내가 기억하는 첫 만남은 유치원에서 돌아왔을 때 보들이가 매트리스 위에 누워있는 모습이었다. 인형뽑기가 취미였던 엄마 덕택에 인형이 어마어마하게 많았는데도 보들이는 특별하게 느껴졌다. 이불을 덮고 누워있던 보들이를 보자마자 너무 좋아서 방방 뛰었다.
하지만 엄마는 말했다. 나와 손을 잡고 가게에 가서 똑같이 생긴 강아지 인형들 중에 하나를 골라온 것이라고. 전혀 기억이 나질 않는다. 보들이는 하나 뿐인 인형이야 라는 믿음으로 스스로 기억을 지워버린걸까 싶다.
우리 집에 놀러왔던 친구들은 모두 보들이를 알고 있다. “내 제일 아끼는 인형 보들이야.” 하고 꼭 소개 시켜준다. 가끔 사진도 찍어서 보내기 때문에 유명인사다. 비슷하게 생긴 인형들도 지나가다 봤지만 어딘가 하나같이 못생겼다. 보들이의 균형 잡힌 얼굴이 제일이다.
이사를 오면서 대부분의 물건을 싹 버렸다. 내 방에서 제일 오래된 물건이 보들이다. 외동인 나의 동생이라며 엄마가 안겨준 날부터 버린다는 생각 자체를 못하고 있기 때문에 아마 내 손녀딸에게도 소개시켜 줄 수 있을지 모르겠다.
세월이 흐르며 ‘강 보들이’ 라는 이름을 지어줬을 때의 보드라움은 사라지고 윤기 있는 털은 몇 차례의 세탁으로 까슬까슬 해졌다. 하지만 보들이와 똑같이 생긴 보드라운 새 인형을 가져다 준다고 해도 감흥이 없다. 애착 물건이 있는 사람들이라면 고개 끄덕이며 공감할 거다. 인형에 이름을 지어주고 놀이를 할 나이는 훌쩍 지났지만 별개로 오랜 시간 소중히 아낄 물건이 있다는 건 마음 한 구석이 따뜻해지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십여년을 넘게 내 방에서 동거동락한 보들이에게 "밤에 잘 때마다 같이 있어주고 외롭지 않게 나의 친구가 되어줘서 고맙다" 고 말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