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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진정한 공부란 무엇인가
글쓴이 노윤
위기지학(爲己之學)이라 했던가,
옛 시대에 많은 성인(聖人)들께서 많이 하셨던 말이다. 한자 뜻 그대로 자기 자신을 위해, 자기 자신의 인격적 수양을 위해 하는 공부를 말한다. 이 사자성어를 읽어볼 때 우리는 이미 이것이 지금의 시대와는 동떨어진 말이라고 인식하기 쉬울 것이다. 교실에서도,자습실에서도 정녕 이 말은 찾아보기 힘들다. 공부를 하고 있다면 그들의 공부란 단편지식을 암기하는 것이 대부분이다. 그 암기의 목적또한 자신의 수양이 목적이 아닌 미래의 안정된 삶을 위한 것이 대다수이며 그 과정들을 즐겁게 생각하는 사람들 또한 매우 극소수이다. 그들의 공부를 지켜보자면 학생들의 공부에서 생명력이란 존재하지 않는다는 생각을 할 때가 많이 있다. '이 숙제를 하지 않으면 혼나니까''이 문제를 풀지 않으면 시험을 잘 볼수 없으니까' '시험을 못보면 원하는 대학에 진학할 수 없으니까' '원하는 대학에 들지 못하면 원하는 취직을 할 수 없으니까' '취직을 못하면 먹고 살기가 힘드니까' 심지어는 '공부를 하지 않으면 혼나니까'라는 것과 같은 생각들이 학생들 대부분의 머릿속을 지배하고 있다. 오히려 학교 내에서 공부가 재미있다고 이야기하거나 공부를 열심히 하면 이상하다는 소리를 들을 정도다. '훌륭한 바느질 솜씨도, 훌륭한 그림 그리기도 주변 친구들에게 공부에 의해 나중으로 여겨진다. 아무리 위와 같은 것들에 재능이 있고 좋아해도 공부를 잘 못하면 인정해 주지 않는다. 공부가 우선이고 나머지 대다수의 재능이나 능력은 보다 나중으로 미루어지는 경우가 허다하다.우리 나라가 학벌중심의 사회에 들어서기 전에만 해도 세계의 많은 사람들이 자기 자신을 위한 다양한 활동과 공부를 하기 위해서 노력하셨으며, 그분들에게 있어 학문을 함이란 지식을 습득하는 것이 아니었고 남에게 그것을 드러내기 위함도 아니었다. 또한 단순히 좋은 직업,직장을 얻기 위해 하는 공부가 아니라 세상속의 이치와 진리를 깨우치고 그것을 통해 끊임없이 자기 자신의 부족함과 허점을 깨닫고 이것을 수양하기 위해 노력하는 것이 바로 조상님들의 공부였다.
또한 공부는 수단이자 노동이 아니었다. 대장간에서 쇠를 두드리는 것을 연습하는 것도,
농사를 짓기 위해 노력하는 것도 물레를 돌리는 것도 모두 공부였다. 그들은 그 공부 자체를 즐겼으며 또한 이러한 행동들을 통해 그들은 부족한것을 찾을 수 있었고 이것을 통해 보다 완성된 자신을 위해 노력했다. 물론 그들도 지금과 같이 일을 하고 보수를 받았다. 그러나 그것은 그들의 목적이 아니고 공부한 것의 결과물 중 일부일 뿐이다. 즉 그 보수라는 것을 애초에 바라고 공부한 것이아니라 자체를 즐기고 노력하고 나서 보니 따라오는 결과중 일부가 물질적 이익이 되는 것이었다.
허나 우리 사회를 다시 돌아보라 학생들에겐 연필을 잡고 자리에 앉는 것 자체가 큰 고통이다. 자신이 하고 싶은 것이 있어도 하지 못하고 오로지 학교의 교과공부만 해야 하니 그들이게는 그만큼 억지로 하는 것도 드물 것이다. 억지로 하게 되니 자연스레 그 부분의 흥미가 이미 떨어지게 되고 결국 자신이 재능을 보였던 분야도 서서히 포기하고 다른 길로 접어들기 시작하는 것이다. 이는 아까도 언급했듯이 화려한 학벌과 지식이 없으면 원하는 취직을 하기 힘든 우리 나라 사회에가 형성한 상황이다.인간은 사회적 동물인 만큼 사회의 흐름에 맞추어 살아가지 않으면 생존하기 힘든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이대로 계속해서 교과서 내의 지식 습득만을 목표로 하는 공부를 하게 되면 자연스레 공부는 공부가 아닌 또다른 형태의 완전한 노동이 되고 말것이다.
따라서 우리는 좀더 눈을 크게 뜨고 공부에 자그마한 생명력이라도 더해서 위인지학(爲人之學)이 아닌
위기지학의 공부를 하기 위해 노력해야 한다. 우리는 대부분 부모님이나 선생님을 의식하며 공부를 하게 된다. 아까와 같이 '공부를 하지 않으면 혼나니까'와 같은 생각은 상당히 그 학생의 공부정신이 위인지학의 공부를 통해 쇠퇴했음을 말해준다. 계속해서 그러한 공부를 하다보니 위선적이고 표면적인 공부만을 하게 되고 그렇게 하다보니 점점 다른 취미활동과 같은 것을 할 시간은 없어지게 되고 공부의 완성도는 결국 떨어지게 되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달리 세계에서 현대적 흐름속에서도 가장 완성적인 공부를 하고 있는 나라가 필란드와 같은 나라들이다.
그곳의 학생들은 부모님이 학교성적에 지나치게 관여할 뿐 아니라 나라의 흐름이 달라서선생님들의 교육부터가 다르다 배운내용을 복습하는 것에 끝나지 않고 궁금한 것들을 탐구하여 상대 학생과 토론하며 공부를 한다고 한다. 토론을 할 수 있다는 것은 배운 지식을 완벽히 습득했을 뿐 아니라 어떻게 그 내용이 변형된다 해도 금새 알아내고 응용할 수 있는 실력을 갖추었다는 것을 의미하며 그것을 자신의 부족한점과 연결시키거나 사회에 필요한 곳에 적용시킬 수 있을 정도의 학력(學力)을 갖추였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렇기에 우리나라의 단순주입식 공부법을 통해 양성된 학생들이 이 학생들보다 학력(學歷)은 좋을 지 몰라도 학력(學力)과 인성은 절대로 따라잡을 수 없는 것이다.
따라서 필란드와 같은 국가의 학생들처럼 우리가 늘 중용에 머무르면서 보다 살아있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하루 하루 자기 자신의 모습을 반성하는 공부가 필요하다. 옛 성현들이 그러했듯 늘 학생으로서 지켜야 할 도리를 잘 지켰는지 점검하고 혹 실천하지 못한 것이 있다면 반드시 고치기 위해 노력해야한다. 3살 버릇 80살까지 간다는 속담은 모두가 잘 알고 있질 않은가 지금 잘 형성해놓은 습관은 평생동안 우리의 바른 인생을 지켜줄 것이다.
그 다음으로는 늘 독서를 하는 습관이 필요하다.
책이란 마음의 양식이며 만물의 성질과 세상의 이치가 담겨있는 것이다. 독서를 함으로서
인격수양을 할 수 있을 뿐 아니라 보다 재미있는 탐구적 학문을 할 수 있다. 또한 시험공부를 할때와 같은 부담감 없이 자연스럽게 지성을 쌓아나갈 수 있을 것이다. 선생님들이 그토록 독서를 강조하시는 이유도 그러한 부분에서이다. 그러나 우리는 이를 잘 지키지 않는다. 독서를 많이 한 학생이 나중에 승부를 결정짓는다는 사실을 모르기 때문이다. 나중에 이르면 단순히 지식을 아는 것을 넘어서 이를 통한 여러가지 문제 해결능력을 필요로 하는데 결국 이것을 얻을 수 있는 방법은 독서뿐인데도 눈앞에만 존재하는 현실을 근거로 그러한 착각을 계속해 나간다면 자신의 한계에 부딪히는 날을 가만히 기다리고만 있게 된다. 꼭 책을 많이 읽자
마지막으로 공부는 자기 자신이 주도해나가야 한다. 우리나라에 지나치게 많은 학원이 번성하게 되면서 이제 학생들의 80%이상이 학원을 다니며 공부하게 되었다. 또한 그 학원비를 내주는 부모님은 성적의 변화에 계속 신경을 쓰시며 나 자신보다 부모님이 성적에 더 좌우하는 상황이 많이 이루어 지고 있다. 스스로 하지 못하는 공부는 절대로 즐길 수 있는 공부가 될 수 없다. 이미 틀 안에 갇혀 있는 상태에서 과연 우리가 우리 자신을 돌아보고 독서를 할 틈을 만들수 있을까, 막연하게 학원에 다니면서 스스로 부모님이나 학원선생님에 의해 일부 학교 성적이 안심하고 자기 자신의 공부는 잃어 버리게 되는 것이다. 지금까지 계속 학원에 의존하며 공부를 해온 사람이 있다면 이제는 자신을 믿고 한계에 부딪혀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더 이상의 도약은 힘들어진다. 자신이 주도해나가는 공부를 하기 위해서는 우선 자신이 하고 싶은 취미 활동을 지속적으로 하거나 만들어야 한다. 취미 활동을 통해 우리는 자기 자신의 재능의 재확인을 통해 자신감을 형성할 수 있으며 즐기는 자를 따라갈 사람은 없다는 말이 있듯이 취미활동을 하면서 고도의 집중력을 유지 하는 것과 자기 능력의 종합적인 계발을 가능하게 할 수 있다.
또한 흔히 취미활동과 공부를 다르게 생각하는 학생들이 많은데 이것은 아까도 말했듯이 엄연한 착각이다. 우리의 옛 조상들에게는 모든 분야에서 최선을 다하며 자기 자신을 수양하는 것이 공부였으며 이 다양한 분야들이 서로 상호작용을 일으키며 연관학습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대표적으로 우리는 과학에 수학이 들어있다는 것을 알고 역사에는 언어가 들어있다는 것을 안다. 하물며 이 세상에는 수많은 분야가 존재하는데 과연 그 연관성을 우리가 어떻게 다 알 수 있을까? 우리가 배우고 있는 주요과목(국어,수학,사회,역사,과학,언어)은 그러한 여러 분야들의 중심을 이루고 있는 것일 뿐 그것이 전부라는 생각과 단순히 타인들에 의해서 좋은 직장을 얻기 위해서 물질적으로 성공하기 위해서 하는 공부는 멈추고 자기 자신이 주도해 나가는 즐기는 공부를 향해 나아가야 한다.

우리의 직업은 학생이며 학생의 가장 큰 본분은 공부이다. 현대화 속에서 많은 국가가 학벌위주의 사회로 바꾸면서 우리는 지나친 성적 중심의 공부 속에서 잘못된 인식을 함으로 인해 생명력 없는 죽은 공부를 많이 하고 있다. 비록 과거처럼의 공부는 이제 불가능해졌지만 여전히 우리는 학력(學力)을 키울 수 있는 공부를 할 수 있다. 집에서 키운 동물들보다 야생에서 생존해온 동물들이 더욱 강력하듯이 우리도 이제 우리가 주도해나가고 우리가 찾아보고 우리가 성공해보고 실패하는 그러한 공부를 통해 '위기지학'의 자세를 실천해 나갈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