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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기/생활문/수필

제목 덧칠
글쓴이 강유미
도전을 할수록 상처만 받는 건 왜일까. 실패를 할수록 덧칠만 되어가는 것 같다. ‘너는 태어나길 이것 정도 되는 사람이라고.’ 라는 작품이 선명해져가는 느낌이다. 가끔은 아무것도 애쓰지 않았는데 불쑥 기회가 선물이 되고 조금만 노력했는데도 놀랍게도 품에 떠안겨지는 성과가 있었으면 좋겠다. “세상에 노력 없이 얻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다구요!” 되었으니, 타고나길 백마로 태어나서 빛나는 털을 오래도록 유연하게 하고 싶다.
부정의 주술처럼 부정은 부정을 일으킨다고 하는데, 실패에 계속적으로 긍정적일 만큼 체질이 긍정은 아니다. 때때로 내 글을 우울에 묻어 흠뻑 우울이라는 바다에 취하고 싶어질 때가 있다. 강할 때가 있었는데, 금방 잊어버리고 만다. 작은 날개짓이 모여 태풍을 일으키니 제 아무리 벽돌집인들 태풍을 이길 수 있을까. 아무리 내게 친절해도 가까워지지 않고 싶은 상대가 있듯이, 사람들은 모두 한계점이 있는 것 같다. 그런 것처럼 나도 어떤 사람에게는 타고나길 마음에 들지 않는 사람이고, 타고나길 여기까지가 최선인 사람이고, 아무리 노력해도 어떤 지점에는 도달하지 못하는 사람이다. 는 것을 인정하면 오히려 당연한 기분이 든다. 나는 아이슈타인이 될 수 없고, 헬렌 켈러 될 수 없고, 작게는 어떤 누군가에겐 평생 사랑 받지 못하리라. 왜냐면 난 그런 사람이다.
세상은 불균형하다. 정의가 이기란 법도 악이 지란 법도 없다. 건실한 사람에게 더 많은 행운이 찾아오지도 않고 악인에게 더 많은 불운이 찾아오지도 않는다. 상처 받기 무서워 더 도전을 하지 않는다는 소리를 하면 너는 너무 약한 사람이라고 한다. 노력도 해보지도 않고 그런 소리를 한다고. 어떤 젊은이들은 노력이라는 노이로제에 걸렸을 수도 있다. 내가 노력을 덜해서 가난하구나, 내가 노력을 덜 해서 얻을 수 없었구나. 하고 인정하면 오히려 당연한 기분이 들겠지. 세상의 모든 사람들은 너보다 노력하며 살고 있으니까. 세상은 그렇게도 균형적일까? 가지고 없는 걸 채우기 위해 노력하는 사람들은 채움의 시간들을 인내하고 있는 것 뿐이다. 누군가는 가지고 태어난 용량을 위해서. 어쩌면 그런 용량을 평생의 노력에도 채우지 못할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가지지 못함을 서러워하면서 있으면 무엇이 달라지냐는 것이다. 너보다 못가진 사람들은 어떻게 사는 거냐. 그런 채찍질에 누군가들은 맘껏 토로하거나 슬퍼할 겨를 없이 그저 살아가고 있다. 다른 사람의 불행에 안식하면서, 혹은 자극 받으면서. 아, 이데아나 유토피아로 도망쳐 그 품에 폭 안기고 싶다. 세상의 모든 채찍소리가 없어지게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