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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사 독서치료

제목 (4) 마치는 말


이 논문에서 살펴본 것은 우선 독서행위의 이론과 치료적 전략이 유사하다는 점이었다. 그러나 독서심리학이 단순한 심리주의의 방법으로 해결되어서는 안 된다는 점 또한 규명해 보았다. 그 이유는 심리가 부정적으로 체현되는 속성이 있기 때문이었다. 그러므로 치료에서 반드시 고려해야 할 것은 단순한 독서심리학의 메커니즘도 아니고 또 치료학에서 말하는 동류요법도 아니다. 그것은 두 가지(동질성과 이질성)가 환자의 상태에 따라 서로 어떤 메커니즘으로 영향을 미칠 수 있는지에 따라 다르게 적용되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 말하자면 나이브한 독자나 심한 증상을 보이고 있는 환자에게 수준 높은 심미적 텍스트는 절망만을 안겨줄 뿐이라는 것이다. 이저는 이런 의미에서 독서가 치료는 아니라고 주장한다. 그럼에도 진단적 방법이나 치료에 있어서 상담자나 문예학자가 개입함으로써 문학은 원활히 읽히고 치료를 할 수 있는 좋은 수단이 될 수 있다. 우리는 이 점을 치료에서 뿐 아니라 독서심리학에서도 같은 원리로 이해할 수 있다. 문학을 가르치는 데 있어서도 이 부분은 간과해서는 안 된다. 치료든 교양이든 결국은 자신(원초적 나르시시즘, 원초적 상흔, 고착)을 버리고 타자(이해, 사회화, 개방성)에로 나갈 수 있는 힘이기 때문이다.

작가/독자가 ‘선택’과 ‘조합’을 통해 세상을 재단한다는 이저의 주장은 곧 고착에 빠진, 오인의 구조를 갖고 있는 독자/환자의 인식과 정서를 동질적인 데서 벗어나 이질적인 것을 통해 새로운 동질성을 확보하게 해준다는 치료적 전략과 유사하다. 이것을 이저는 한마디로 “동질적이 아닌 것이 영향의 조건이며, 이 조건이 독자에게서 텍스트의 의미구조로 실현된다 Das Nicht-Identische ist die Bedingung der Wirkung, die sich im Leser als die Sinnkonstitution des Textes realisiert” Iser, a.a.O., S. 75. 고 표현한다. 이질적인 것에서 빈자리가 드러나고 그 빈자리를 곧 의미로 채우는 것이 독서의 과정이라면 이질적인 것에서 무의식이 드러나고 그 무의식의 자리에 자아를 설정해야 한다(“Wo Es war, soll Ich werden” Sigmund Freud, a.a.O. Bd. XV, S. 86 (XXXI. Vorlesung). )는 프로이트의 견해와 다를 것이 없다.


(현대)문학은 인간의 상처로 인해 발생된 것인 만큼 그것이 치유적 효과도 있다. 치료에서 우리는 보통 독자/환자가 자기의 문제를 털어놓는 것만 해도 절반은 고쳤다고 말하는데 그 이유는 문학이 독자/환자가 자신의 문제를 의식의 검열 없이 털어놓게 하는 수단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이 의식 없이 털어놓는 데는 단순한 동질성의 전략으로는 부족하다. 오히려 이질성을 통해 자신의 심리를 더 드러낸다는 이저의 독서심리학은 수용미학의 차원을 넘어 영향미학에서 파악될 수 있는 역동적 심리학을 토대로 한 이론이라 할 수 있다. 이저가 논증한 것은 병리학적인 측면에서 기(氣) Energie를 방출하는 데까지는 정서적 동일시로 가능하겠지만 실제적으로 새로운 통찰(Einsicht)을 가져와 환자에게 그 기를 제어할 수 있는 힘을 강화하는 데는 이질성이라는 인지적 동기가 있을 때 비로소 가능하다는 점이다. 이는 치료의 조건을 방증(傍證)해주는 이론이라 할 수 있는데 다만 환자의 증상이 심할수록 인지적 구조(또는 상징)보다 클리세이적 상상이 더 우세함을 드러내주는 것도 감안해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