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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사 글쓰기지도

제목 아이들은 일기를 얼마나 솔직하게 쓸 수 있을까?


초등학교 고학년을 대상으로 일기를 솔직하게 쓰는 친구들이 얼마나 되는지 물어본 결과, 놀랍게도 많은 친구들이 솔직하게 쓰지 않는다고 대답했다. 여기서 솔직하지 않다는 의미는 거짓일기 뿐만 아니라 써야할 일을 일기로 쓰지 않고 다른 내용을 쓰는 것 까지를 포함한다. 많은 아이들이 선생님이나 부모님께 보여줘야 하기 때문에 잘못한 일, 창피한 일은 쓰기가 어렵다고 한다. 이런 상황에서 “그래도 무조건 솔직하게 쓰라”고만 가르칠 수 밖에 없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생각해야 할 점이 많다. 아이들이 자신이 잘못한 일에 대해 쓰지 않으려 하는 시기는 2학년 말부터이다. 학교에 처음 입학해 부모님이나 선생님이 시키는 대로 하는 1학년 시기는 비교적 솔직하게 쓰지만 거짓말이 늘고 자기만의 비밀이 생기기 시작하는 2학년부터 숨기고 싶은 일이 많아진다. 다음은 초등학교 4학년이 쓴 일기이다. 


<2002년 8월 28일 날씨 : 흐림>

오늘은 슬픈 날이었다. 왜 슬펐느냐 하면 내가 그렇게 가지고 싶어 하던 '임진록'을 경환이가 샀기 때문이다. 나는 임진록을 하려고 엄마에게 그렇게 사달라고 부탁했지만 엄마는 게임을 너무 많이 한다는 이유로 사주지 않았다. 경환이는 임진록을 학교에 가지와 와서 자랑을 했다. 그런데 나는 임진록이 너무 가지고 싶어서 경환이 CD를 훔치고 싶었다. 그러나 꾹 참고 집으로 왔다. 지금 생각하니 훔치지 않기를 잘했다는 생각이 든다. 왜 내가 남의 것을 훔칠 생각을 했었는지 모르겠다. 경환이에게 게임CD를 빌려달라고 부탁을 해야겠다. 다시는 나쁜 생각을 하지 말아야지.

친구의 게임 CD를 훔치고 싶었던 마음을 스스로 탓하고 있다.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드러냈으니 자연스럽게 반성하는 단계까지 이르게 되었다. 이 정도의 일기를 쓸 수 있다면 아이는 솔직한 일기를 쓰는 수준이라고 보아야 한다. 그러나 문제는 이 학생이 결국 게임 CD를 훔쳤다고 가정했을 때, 과연 이 학생이 그 사실을 일기에 쓸 수 있었겠느냐 하는 점이다.
청소년에 이어 근래에는 초등학생의 범죄행위도 갈수록 증가하고 있는 실정이다. 게다가 급속도로 증가하는 성인물의 홍수 속에 초등학생까지 무방비로 노출되고 있다. 이러한 환경에서 아이들은 숨겨야 할 일들이 많아질 수밖에 없다. 아이가 자신의 잘못을 고백하기로 작정을 하지 않은 다음에야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알려지면 당장 문제가 될 내용을 일기에 쓰기란 어려운 일이기 때문이다.

초등학생의 일기지도는 일기 쓰는 습관을 길러주기 위해 의도적으로 접근할 수밖에 없고, 그러기 위해서는 필연적으로 부모님이나 교사가 읽어보는 과정을 거쳐야 한다. 그러나 그런 특성 때문에 아이들이 정말 잘못하는 일은 일기를 통해 밝히지 않을 수도 있다는 점은 큰 딜레마가 아닐 수 없다. 실제 아이가 학교에서 일으킨 잘못 때문에 선생님과 의논을 해야 할 정도의 일이 생겼어도 부모님은 전혀 눈치조차 채지 못하고 있는 경우가 허다하다. 아이들의 잘못된 행동이 일기를 통해 나타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이 일기를 솔직하게 쓰도록 최선을 다해 지도해야 함은 물론이다. 그래야만 성장하면서 남에게 보여주지 않는 자신만의 일기를 쓸 때도 일기를 자기성찰의 수단으로 활용할 수 있는 능력을 갖출 수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아이들이 크게 잘못한 일을 일기로 표현하지 못하는 문제를 해결하기 위한 방안으로, 일주일에 한두 번 정도 마음의 일기를 쓰도록 하는 방법을 생각해볼 수 있다. 최근 각 학교에서도 일주일에 한두 번은 일기 쓰지 않아도 되도록 허용하고 있는 점을 감안할 때, 그런 날은 학교에서 잠시 시간을 내어 모든 학생이 눈을 감고 마음으로 일기를 쓰도록 지도한다면 부모님이나 선생님에게 알려지는 것이 두려워 그냥 덮고 넘어갔던 자신의 과오에 대해 좀더 깊게 생각해 볼 수 있게 하는 기회를 부여할 수 있을 것이다.


[최종정리일 2005년 4월 2일. 이기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