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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사 글쓰기지도

제목 3. 예의와 격식을 갖추어 상대를 위주로 쓰기


편지란 상대방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일정한 형식에 맞추어 쓴 글로, 상대방에 따라 예의를 갖추어 써야 하는 글이다. 편지는 자신의 마음을 전하는 도구다. 예의를 갖추어서 진심을 담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예의와 격식을 차린 문장은 받는 이에게 호감을 준다. 따라서 편지의 종류나 상대방에 따라 표현 방법이 달라진다. 편지의 종류에는 목적에 따라 문안 편지, 축하 편지, 위문편지, 주문 편지, 초대 편지, 사례 편지 등이 있고 내용에 따라서는 개인적인 편지 (사적), 사무적인 편지(공적)로 구분한다. 어떠한 경우라도 상대를 존중하며 그에 걸맞게 예의와 격식을 맞추는 것이 필요하다. 아버지가 아들에게 쓴 편지를 소개한다.


사랑하는 아들.
독감으로 학교에도 가지 못하는 너를 두고 이른 아침 길을 나섰다. 혼자 앓고 있을 널 생각하며 이번 여행을 포기할까도 생각하였지만, 계획한 일이라 다녀오기로 했다. 이마를 만지는 아빠에게 괜찮으니 행복한 시간 가지라며 오히려 위로하여 주었지
.


어른이 되어 가는 나의 아들아.

3이란 시간을 보내며 힘들어하면서도 내색하지 않고 평상심 유지하며 꿋꿋하게 생활하는 너의 모습이 대견할 뿐이란다. 온 정성을 쏟은 후에 주어지는 결과에는 순응하자. 기회는 늘 있는 것이 아니니 후회하는 일은 없도록 하자는 아빠의 말을 잘 간직하고 생활하는 아들이 자랑스럽다. 집을 나서 광안대교를 달리는데 이제 막 푸른 바다 위를 떠오른 붉디붉은 태양이 내 뒤를 따르더구나. 조금은 무디어질 나이인데도 여행의 설렘은 어쩔 수 없나 보다. 금세 활기를 되찾고 집결지를 향하여 가속 페달에 힘을 가했다. 새벽 공기가 참으로 상쾌하더구나. 조금 이르게 도착했지만, 버스에는 일행이 이미 도착하여 출발을 기다리고 있었어. 초등학교 아이들과 부모님이 함께하는 함께 가는 현장체험이라는 프로그램이라고 동행하는 선생이 일러주더구나. 그래서 화기애애한 분위기였고 한층 기대되는 여행이었어. 이번 여행은, 너도 잘 아는 글나라 연구소에서 며칠 전 남도 기행이 계획되었다며 동행 여부를 물어왔고 흔쾌히 수락함으로 이루어졌단다. 참으로 고마운 일이라 생각해. 살아가며 누군가에게 관심과 호의를 받는 것만큼 행복한 일도 없겠지? 얼마 전 박경리 문학관 기행도 삶의 활력이 되었기에 이번 기행도 큰 의미를 가지려고 한단다. 더욱 기대가 큰 것은 미지의 남도 여행이라는 것이지. 지금껏 아빠가 전라도 지역을 여행하지 못하였단다. 기회가 두어 번 있었지만 공교롭게도 무산되거나 동행이 어려워지더구나. 그러니 이곳이 초행길인 셈이다. 아니나 다를까, 일행 중 유달리 홍조를 띤 두어 사람도 초행길이란다. 우린 끈끈한 동지애(?)로 손을 잡으며 기뻐했단다.


이내 차 안이 술렁거리며 서서히 움직이더니 도심을 빠져나가기 시작한다. 지난번 문학 기행 때 달렸던 그 길로 다시 접어드니 이내 섬진강 푸른 물줄기가 떠오르더구나. 아마도 오늘은 더 깊숙이 들어가겠지. 땅끝 마을 해남까지 여행한다니 말이야. 두어 시간을 내달린 버스는 순천에 들어섰다. 처음 대하는 고장이지만 낯설지가 않더구나. 시골 할아버지 댁에 갈 때의 풍경이라 생각하면 돼. 길가로는 백일홍이 흐드러지게 익어가고 그 너머 들녘에는 노랗게 가을이 익어가고 있더라. 이내 아빠도 그 정취에 겨워 붉고 노란 마음이 되더구나. 가슴으로 맘껏 받아들였단다. 차창으로 지나가는 이정표에 낙양이 보이더니 이내 벌교로 접어들더구나. 연이어 유명한 보성 차밭이 지나가고 네 시간여를 달려온 버스는 목적지인 강진에서 속도를 늦추더니 다산초당이라는 갈색 푯말 앞에 이르러 일행이 내리기를 재촉하였어.


다산을 알지 못하면 근대 학문이나 사상을 논할 수 없다.’ 술에 취하면 하루가 가고 목민심서에 취하면 천 년 대계가 이루어진다.’ 드디어 역사 속 대학자이며 실학을 집대성한 정약용 선생이 여러 해 유배 생활하며 사상 초유의 저작을 집필하였던 곳인 다산 초당 초입에 선 것이란다. 다산 선생에 대해선 익히 알고 있을 거야. 이곳은 정다산유적(丁茶山遺蹟)지로 전라남도 강진군 도암면 만덕리에 있단다. 조선시대의 실학자 정약용 선생이 18년 동안 유배 생활을 하였던 곳이지. 선생은 이곳에서 제자들을 가르치며, 다른 한편으로는 너도 알고 있을목민심서』 『흠흠신서』 『경세유표5백여 권에 이르는 방대한 책을 저술하였었지. 원효대사가 많은 책을 저술하였다고 전하여지지만 다산 선생에 미치진 못한단다. 한마디로 역사를 통틀어 최고 학자이시며 사상가인 셈이지. 18세기 말에서 19세기 초까지 75세를 일기로 세상을 하직하였으니 동시대의 마르크스나 소유냐 존재냐를 집필한 에리히 프롬의 사상보다 앞섰다고도 볼 수 있지. 여전론, 정전론을 통해 토지개혁을 주창하였고 재물은 소유가 능사가 아니라 시혜의 대상이라며 이미 기부를 주장하였으니 말이다. 서양을 앞선 사상가이시니 우리의 큰 자랑이겠지. 함께 오지 못하여 안타깝지만, 아빠가 다산 선생이 오래도록 머물며 학문을 완성한 이곳을 세세히 소개하여 볼게. 언젠가 아들도 꼭 한번 들러 선생의 자취를 더듬길 바라마.


아빠는 이곳을 천천히 음미하며 즐기고파 일행과 저만치 떨어져 걷기 시작했단다. 아빠가 느린 탓도 있지만, 아이들과 함께하는 자리라 혹시나 독감을 옮길지도 모른다는 노파심도 내심 일었단다. 물론 아빠가 감기 증세는 없지만, 너와 같은 공간에서 생활하니 혹시나 해서 말이야. 다산 초당은 두충나무가 우거진 오솔길로 시작하더구나. 그 신선함에 머리가 맑아지는 느낌이었어. 오솔길을 지나 한참을 오르니 관광지에선 흔한 선물 가게와 식당이 조그만 군락을 이루고 있더구나. 일행은 어느새 보이지 않았고 내려오는 이에게 물으니 20분 정도 산길을 오르면 초당이 있다 한다. 그늘이 드리운 오솔길을 산내를 음미하며 걷는데 수백 년 된 소나무 잔뿌리가 길 위에서 서로 뒤엉켜 긴 세월을 이야기하고 있었다. 시인 정호승은 이 길을 뿌리의 길이라 노래하였다는구나. 이미 땀범벅이 되었고 힘겨웠지만 예서 포기할 순 없었겠지. 아들에게 선생의 시대정신을 전해줘야 한다는 생각에 불끈 주먹을 쥐었단다. 한참을 더 걸어 오르니 그제야 웅성거림과 함께 숲 틈으로 기와집이 보이더구나. 드디어 다산 초당에 도착한 거야. 첩첩산중에 있는 그곳은 고즈넉하였어.


이곳 초당에 오르면, 빼놓을 수 없는 보물이 있단다. 다산 4경이 그것인데 정석, 약천, 다조, 연지석가산이란다. 고적한 유배 생활이 느껴지는 유물들이다. 왼편으로 유배를 마치고 고향으로 돌아가기 직전 직접 새겼다는 선생의 성씨인 ()에다 ()자를 붙여 새긴 큰 바위가 있는데 이것이 정석이며 다산의 군더더기 없는 성품을 보여준다고 설명하는구나. 또 하나가 다산초당 뒤편의 약천인데 가뭄에도 좀처럼 마르지 않는다는 샘이래. 그리고 마당에는 스승인 초의선사와 차를 나누었다는 차 끊이는 부뚜막이라는 뜻의 다조가 있어 걸터앉아 차 한 잔 마시고 싶게 만들었어. 마지막으로 오른편에 있는 연못 안에 세운 봉우리란 뜻의 연지석가산이 있더구나. 조금은 초라한 못이었지만 선생이 손수 바닷가에서 주워온 돌로 꾸몄으며 잉어를 키웠는데 유배를 마친 후에는 잉어의 안부를 묻곤 했다는구나. 이곳에는 초당을 중심으로 서암, 동암 그리고 천일각이라는 정자가 있단다. 다산초당의 열려 있는 문 안에는 선생의 온화하면서도 위엄이 느껴지는 모습의 영정이 찾아온 나그네들을 맞이하고 있었다. 옆방에는 길손들에게 다례와 붓글체험도 하게 배려하더구나. 한순간이나마 대학자가 되어 의관을 정제하고 훈장님 지도로 자신이 원하는 글귀를 써 보게도 하더구나.


아들아. 만약에 네가 예기치 못한 일로 일 년 동안 가택연금을 당한다면 과연 어떤 생각과 행동을 하며 지낼까? 이곳에 들르니 문득 그런 질문을 하고 싶구나. 정조의 총애를 받던 선생이 왕의 갑작스러운 죽음으로 말미암아 의지할 곳을 잃게 되었고 중국에서 들어온 천주학이 널리 퍼져가자 위협 느낀 집권 세력인 노론의 모함에 의해 많은 이들이 죽임을 당하거나 유배를 가게 되지. 이 신유박해에 연루되어 선생은 이곳으로 유배당하지. 18년이란 긴 세월을 이곳에서 고립되어 보내면서도 원망은커녕 자기를 완성하는 기회로 삼은 선생의 시대정신은, 사소한 일에도 자신의 뜻을 곧잘 포기하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분명히 시사하는 바가 크다고 볼 수 있겠지? 역사 속에서 지혜를 얻고자 함이 어쩌면 역사 속 인물을 만나는 이유이니까……. 이 정신만은 얻어 가지자고 말하고 싶구나. 울 아들이 이 시대의 지식인이 되었을 때 어떠한 자세를 지니며 살아가야 할지를 생각하는 시간을 가져 보길 바랄게.


이런 생각을 하면서 다산이 주로 기거하며 저술에 2천여 권의 책을 갖추고 있었다는 동암에 이르렀구나. 익히 아는 목민심서도 그리고 유배지에서 형, 제자에게 보낸 편지도 아들에게 거가사본을 편찬하라고 독려하는 편지도 그리고 그 밖의 많은 저작이 이곳에서 쓰였다 생각하니 먹 냄새가 풍기는 듯하였어. 이곳에서의 느낌이 아마도 아들에게 이 편지를 써야겠다는 생각을 하게 하였을 거야. 그 옛적 선생이 폐족이 되어 살아가는 두 아들에게 세상을 구했던 책을 읽으며 학문에 정진하라고 당부하던 글을 쓰든 그 마음으로 말이야. 이곳에서의 여정도 마무리되어가는구나. 마지막으로 하늘 끝 한 모퉁이라는 뜻을 지닌 정자인 천일각에 이르니 강진만이 한눈에 펼쳐져 있었어. 이곳은 자산어보로 알려진 둘째형 정약전이 그리울 때면 이 언덕에 서서 스산한 마음을 달랬다고 전하여진단다. 둘째형과의 애정이 굉장했다는구나. 그러니까 이곳에 서서 흑산도로 귀향 간 형님을 그리워하였겠지. 선생은 이곳에서 아들의 죽음을 접하고 참척의 한을 지니게 되었으며 사랑하는 형의 사망소식도 듣는단다. 그는 형을 회고하며 백아절현에 비유하여 자신을 알아주는 이라 하였으며 귀양지 백성이 존중한 사람이었고 정조가 그의 인품을 높이 기렸다며 조의를 표했다고 하는 것을 책에서 본 적이 있단다. 선생의 인품이 느껴지지 않니? 일행이 정자에 모여 앉아 안내자의 다산에 대한 풍성한 식견을 접할 즈음, 정자 앞으로 나있는 백련사 가는 길을 뒤로하고 선생의 선비 정신을 다시금 음미하며 이른 하산을 시작하였다. 우려하였던 대로 내리막길의 습기 머금은 소나무 뿌리는 엉덩방아를 찍게도 하였으나 막바지에 만난 두충나무 오솔길의 정취로 말미암아 행복하였단다.


남도 하면 풍성한 먹을거리 아니겠니? 시장기가 동한 점심 상차림은 그리하여 달콤하였단다. 넉넉한 인심과 함께하였기에 더 좋았어. 조만간 가족 여행지로 이곳 남도로 와야겠단 다짐을 하여 둔단다. 이제 우리 일행은 조선시대 활약한 문신이며 국문학상 대표적인 시조시인인 고산 윤선도 선생의 유적지인 녹우당을 들렀다 갈 예정이라고 하는구나. '명문가 이야기'란 책에서 아마 접하였을거야. ‘어부사시사는 알지? 그곳 이야기는 마주앉아 차 마시며 나누기로 하자. 이곳 남도에 들러 우리의 위대한 스승인 다산 선생을 만나고 그 감흥을 아들에게 전하고 보니 왠지 뿌듯하다. ‘나는 무엇을 위해 사는지, 무엇을 위해 살았는지돌아보는 소중한 시간이었단다. 이 화두를 너에게 던져 본다. 백절불굴의 다산 선생이 내뿜은 일갈이 우리가 살아가는 모순의 이 시대에 희망이란 생각을 하여 본단다. 양심을 지키며 좋은 생각을 키워 나가는 사람이 되길 작게 소망하여 본다. 두충나무 오솔길을 내려오면 다산기념관이 있는데 그 뒤쪽에 다산 선생의 말씀의 숲이 있단다. 그곳에는 다산 선생의 동상을 비롯해 정약용 최고의 작품이라 불리는 거중기의 전도도 그려져 있고, 다산 선생의 말씀들을 각계각층의 사람들이 돌에 새긴 것들이 있더구나. 그 중 어느 고등학교 교사가 옮겨 놓은 글을 보낸다. 새겨보도록 하여라.

책이 없더냐, 재주가 없더냐, 총명하지 못하더냐, 어찌하여 스스로 포기하려 드느냐…….’

2009826일 사랑하는 아들에게 강진에서 아빠가 띄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