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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모/교사 독서지도

제목 인물의 성격이나 행동양식을 비교
이솝 우화와 안데르센 동화 비교하기

서울사대부여중 2학년 김원진

“어서 빨리 귀여운 아기들이 나왔으면….”
“연못가에서 엄마오리가 알을 품고 있었습니다. ”
“꽥꽥…” ……
내 동생이 더듬더듬 ‘미운 오리새끼’를 읽고 있다. 새삼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동화들과 우화들이 머릿속을 스쳐지나간다.
‘미운 오리새끼, 엄지공주, 사자와 여우, 토끼와 거북이, 백조 왕자, 시골쥐와 서울쥐…’
어릴 때 나는 이솝 우화와 안데르센 동화를 가장 먼저 접하였던 것 같다. 오랫동안 전세계 어린이로부터 노인에 이르기까지 실로 많은 사람들에게 읽혀온 동화 중의 동화들이다.

어린 시절 나는 이솝 우화와 안데르센 동화를 별 차이를 느끼지 못한 채 읽고 지나왔다. 하지만 지금 다시 그 이야기들을 떠올려 보니 이솝 우화와 안데르센 동화는 아주 대조적인 이야기라는 생각이 든다.

우리는 보통 이솝 우화를 읽을 때면 누군가에게 따끔한 충고를 듣는 것 같은 느낌을 받고 안데르센 동화를 읽을 때엔 감동으로 가슴이 따뜻해지는 것을 느낀다. 이렇게 읽는 느낌부터 다른 것은 왜일까?

‘여우과 포도’, ‘개미와 비둘기’, ‘토끼와 거북이’, ‘시골쥐와 서울쥐’ 등의 이솝 우화에 나오는 동물들은 모두 다양한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꾀가 너무 많은 당나귀’란 이야기를 대표적인 예로 들고 싶다. 이 이야기는 소금을 매고 가다가 잘못하여 물 속에 빠진 당나귀가 소금이 녹아 짐이 가벼워지자 그 다음에 짐을 지고 갈 때도 짐이 가벼워지길 예상하며 물에 의도적으로 빠졌더니 그 때는 짐이 솜이었기 때문에 물에 빠져 죽은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를 읽으면서 나는 이 속에 숨어있는 충고와 교훈을 알 수 있었다. 이솝은 이 이야기에서 편하게 살려고 얕은 꾀를 부리다가 오히려 죽게 된 당나귀를 통해 이기적인 사람들의 모습을 나타내려고 했을 것이다. 그리고 우리에게 끔찍한 결과를 보여 줌으로써 이기적인 행동에 대한 대가가 혹독함을 알려주려고 했을 것이다.

이솝 우화의 공통점은 언제나 해피엔딩보다는 사람들에게 교훈을 주고 따끔한 충고를 주는 것이다. 아마도 이솝은 이야기를 쓸 때 그 목적을 사람들에게 지혜와 교훈을 제공하는 것으로 정한 듯하다.

이솝은 600년경의 그리스 노예였다고 한다. 이솝은 늘 재치 있는 입담과 뛰어난 재치로 사람들과 동료 노예들에게 이야기를 들려주었다고 한다. 이솝 우화도 바로 이 이야기들을 엮은 책인 것이다. 이솝이 노예였다니…. 아마도 내 생각엔 이솝이 지배층에게 할 말이 많았을 것 같다. 이솝은 노예로서 할 수 없는 이야기들을, 사람을 동물에 비유함으로써 제한 받지 않고 표현할 수 있었던 것은 아닐까.

이에 반해 안데르센은 가난한 구두 수선공의 아들로 태어나 어렵게 자랐다. 그런 안데르센의 동화에는 감동적이고 가슴이 따듯해지는 이야기들이 많다. 특히 결말이 대부분 해피엔딩이다. 내 생각엔 안데르센은 자신의 어려운 상황들을, 행복한 동화를 씀으로써 잊으려 했을 것 같다.

‘성냥팔이 소녀’의 이야기에서는 자신의 어린 시절을 회상하면서 가난한 생활 속에서도 따뜻한 마음을 간직하여 사는 성냥팔이 소녀를 그렸고, ‘엄지공주’와 ‘미운 오리새끼’에서는 어려움을 잘 극복해 나가는 모습을 그린 것을 보면 그런 생각이 든다.
나는 안데르센 동화 중에서도 ‘백조 왕자’를 가장 좋아한다.

‘백조 왕자’는 ‘엘리자’라는 공주가 마음씨 나쁜 계모의 요술에 걸려 백조로 변한 열한 명의 오빠들을 구하려고 가시투성이인 엉겅퀴로 말도 하지 못한 채 옷을 만든다. 나중에는 마녀로 오해받아 죽게 되었으나 옷을 다 만들게 되어서 결국 오빠들을 구하고 누명을 벗고 행복을 얻는 이야기이다. 이 이야기는 스릴감을 맛볼 수 있고 그 구성이 재미있다. 그 중 하나가 공주가 죽으러 갈 때까지 오빠들의 옷을 짜는 것인데 이렇게 고난을 겪으면서도 나중에는 결국 해피엔딩으로 끝난다는 사실에서 안데르센 동화의 특징이 다시 한번 확인된다.

앞에서 소개한 ‘성냥팔이 소녀’와 ‘미운 오리새끼’에서는 미운 오리 새끼나 성냥팔이 소녀나 둘 다 고생을 많이 하긴 했지만 미운 오리 새끼는 자신이 아름다운 백조라는 사실을 알게 되고 성냥팔이 소녀는 하늘에서 할머니와 즐거운 설날을 맞이한다.
아마도 결국 안데르센은 자신의 동화를 통해 많은 어려움에 있는 사람들에게 꿈과 희망을 주려고 했을 것이다.

이렇게 이솝 우화와 안데르센 동화를 비교해 보면서 나는 그냥 읽었을 때에는 알지 못하는 것들을 새삼스럽게 많이 생각하게 되었다. 이솝과 안데르센은 각각 자신들의 책을 통해 우리에게 이야기해 주려고 했던 것과 그 방법이 서로 달랐다. 단지 어린 아이들을 즐겁게 해 주기 위해서 만든 것 같던 이야기들에도 작가의 특성이 나타나는 것을 보고 참 신기했다. 작가가 문학 작품을 통해 말하려고 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아 가는 것이 정말 진정한 책읽기라는 것도 깨닫게 되었다.

이렇게 서로 다른 이솝 우화와 안데르센 동화. 이 둘 중 어느 쪽이 낫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안데르센 동화와 이솝 우화가 서로 다르지만 우리에게 도움이 되고 많은 것을 느끼게 해주는 것처럼 다양한 문학 작품들을 접하면서 정신적인 영양분을 골고루 섭취하는 것이 아닐까? 이렇게 영양가를 고루 갖춘다면 더 감성적이고 생각이 깊은 사람이 될 수 있을 것 같다. [책과 나]


'달과 6펜스'와 '레 미제라믈' 비교하기
  
1. 비교 도서 : 『달과 6펜스』 와 『레 미제라불』

2. 비교 내용 :  서머셋 모음의 『달과 6펜스』의 주인공 스트릭랜드와 빅톨 위고의 『레 미제라불』의 주인공 장발장의 비교

3. 비교하기

『달과 6펜스』에서 달은 순수한 정신적인 세계를 뜻하고 6펜스는 물질적인 세계를 뜻한다.
  이 작품에서 스트릭랜드는 40여 년간을 물질의 세계 즉 6펜스의 세계에서 산다.(6펜스는 아주 적은 돈으로 물질 세계의 가치를 아주 작게 평가한 것이다.) 그러나 더 이상 견디지 못하고 뛰쳐나온다.
  그는 6펜스의 세계가 아닌 달의 세계를 찾지만 그것은 쉽지 않다. 환경보다도 그 자신이 물질의 세계에 너무 길들여졌던 것이다. 그 길들임에서 벗어나 그는 타히티 섬의 깊숙한 곳으로 들어간다.
아직 물질문명이 들어서지 않은 곳! 그곳에서는 문둥병자와 흑인들이 살고 있었다. 거기서 그는 그가 추구했던 예술의 세계 즉 달의 세계를 찾으려 한다. 온 힘을 다해 그렸고 특히 그가 죽기 직전 온 방을 물들였던 그림은  그가 순수한 달의 세계를 이룩했음을 보여준다.
  나이 40이 넘어서 평안한 가정을 버리고 익숙해진 직업을 버리고 그를 뒤쳐나가게 한 힘은 무엇이었을까? 궁금하지 않은가? 나는 누구에게나 그러한 잠재성이 있다고 생각한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6펜스의 세상을 달의 세상보다 더 가치있게 여겨 벗어나지 못할 뿐이다.

『레 미제라불』에서 장발장은 빵을 훔친다. 굶주린 조카들을 위해…그리고 옥에 갖힌 후 탈출을 시도하지만 번번히 실패하여 결국 19년만에 옥에서 나온다.
  19년 동안 변한 사회에 그는 적응할 수 없는 폐인이었다. 나이가 꽤 들었고 당장 먹을 것도 없었다.
  그때 그는 성당의 주교님으로부터 따뜻한 사랑을 받는다. 그 사랑은 예수님이 인간에게 베푸신 것과 다를 바가 없을 정도로 따뜻한 것이었다. 이 계기가 그의 삶을 변화시켰고 스트릭랜드가 집을 뛰쳐나간 것과 비슷한 계기라고 나는 생각한다. 그러나 그 뒤 그의 삶은 순탄치 않았다. 많은 고생과 방황. 이 부분은 스트릭랜드가 물질의 세계를 벗어나지 못해 방황하던 시간들로 볼 수 있다. 그는 사랑을 전했고 약자들을 도왔다. 이상적인 지도자였고 전쟁으로 피폐해진 사람들의 마음을 어루만지기에 힘썼다. 나는 스트릭랜드와 장발장의 미묘한 유사점을 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점을 미리 생각하면서 다시 한번 더 읽어봐야겠다고 생각했다.[독서교육의 길잡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