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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소년 읽기자료

제목 혼불.
탁, 타닥, 타악. 촛불 심지 타는 소리가 크게 울린다. 촛불 아래 누운 청암부인의 누렇게 바랜 노안에, 흔들리는 불 그림자가 일 룽거린다. 그래서 두드러져 뼈가 솟은 곳은 메마른 나무를 깎아 놓은 것 같 고, 움푹 패어 그림자가 고이는 곳은 적막한 골짜기 같았다. 사람의 얼굴을 두고 이마와 코, 그리고 턱이며 양쪽 광대뼈를 일러 五嶽(오악)이라 한 말 이 참으로 옳은 것을 알겠다. 이미 오래 전에 살을 다 벗어버리고 介潔(개 결)한 뼈로만 남은 듯한 청암부인의 얼굴은 말 그대로 산악처럼 느껴진다. 그런가 하면 그네의 얼굴은 露根(노근)처럼도 보인다. 대저 뿌리란 그 몸을 땅 속에 숨기어 묻는 것이 이치이다. 그러나 노근은 지상으로 솟아오른 뿌 리이다. 제 뿌리를 뻗고 있는 산의 지질이 비옥하여 흙이 두터운 곳에 사는 나무는 그럴 리가 없지마는, 천인단애 까마득한 낭떠러지나 만중철벽 척박 한 땅에 서서, 그 뿌리가 암석의 틈바구니에 끼이고, 흙을 깎는 물살에 씻 기어 제 둥치를 지탱하기 어려운 나무는, 처절한 젊은 날을 보내고 노목이 되면, 이제 그 뿌리의 뼈가 땅 위로 울툭불툭 불거져 드러나니. 그 모습은 모질고 끈덕진 세월을 다 肉脫(육탈)하고, 세상을 벗어버린 초연한 기상을 느끼게 한다.   최명희/'혼불'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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