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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장도서

한티재 하늘 1,2

지은이
권정생
출판사
지식산업사
페이지수
283
대상
이전에 나온 동학혁명을 다룬 소설은 대부분 동학혁명의 과정과 앞에 서서 싸웠던 사람들에게 초점이 맞춰져 있다면, 이 책은 동학혁명 때 집에 남아 어려운 시대를 살아낸 가족과 마을사람들의 삶을 애정어린 눈으로 그리고 있다. 역사란 앞에 서는 사람 몇몇이 이끄는 것이 아니라 삶을 버텨내고 여럿이 몸부비며 사는 사람들에 의해 커다란 흐름으로 만들어진다는 것을 알게 하는 소설이다. 미디어 서평 잊기엔 너무 서러운 … 시인 구상(具常)은 일찍이 “원혼(·魂)의 나라 조국아,/ 너를 이제까지 지켜온 것은/ 비명(非命)뿐이었지”라고 노래했다. 비명이 지켜온 이 민족의 역사는 기억하기엔 너무 괴롭지만 망각하기에는 너무 귀중한 자산이다. 『한티재 하늘』(권정생 지음·지식산업사·1998년)은 갑오농민전쟁이 일어난 1894년부터 1937년까지 몇 가족의 4대에 걸친 삶을 진정한 서민의 어휘와 억양으로 생생하게 그려내고 있다. 1937년생인 작가가 19세기 말부터 해방 전까지 민초들의 일상생활과 통과의례, 그리고 갖가지 생업에 대해 그렇게 상세하고 정확히 알고 있고, 그토록 현장감 있게 그려낼 수 있다는 것도 놀랍지만, 수십 명의 주요 등장인물들에게 각각의 개성과 심성을 부여했다는 것은 정말 경탄스럽지 않을 수 없다. 갑오농민전쟁, 국모(國母)시해, 한일합방과 일제의 수탈, 모진 질병, 홍수와 가뭄 등 자연재앙, 끈질긴 가난, 생이별과 사별 등 끊임없는 시련과 고난 속에서 대부분의 민초들은 그저 뼈 빠지는 노동으로 운명에 순응하며 저항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그들에게도 각각의 개성이 있고, 의리와 인정이 있으며, 애달픈 사랑도 있었다. 시아버지와 남편, 모두 ‘빤란구이’(叛亂軍)로 일찍 죽고, 아들만 희망으로 키우며 살았으나 아들도 피를 속이지 못해 저항운동을 하면서 밖으로만 떠돌아 서럽고 며느리에게도 미안한 복남이. 자기 집 문 앞에 쓰러진 계집종과 사랑을 해 산 속으로 도망쳐 화전을 일구며 일생 성실하게 일해도 가난을 면할 길 없는 이석이. 내키지 않는 시집을 갔어도 부지런하고 알뜰하게 식솔 많은 살림을 꾸려가지만 시아버지의 병구완 때문에 빗을 지자 남편은 도박으로 집을 날린 뒤 징용에 끌려가고, 아이들과 낯선 타지에서 모질게 품 팔아도 살 수 없어 밀주를 빚다가 발각되어 벌금형을 받고, 벌금 때문에 몸을 팔고, 마침내 학수고대하던 남편의 소식이 왔을 때는 하룻밤 매춘으로 인해 만삭의 몸이 된 이순이…. 모두들 문자 그대로 ‘죽어라고’ 일하고, 그래도 굶을 때는 “하늘이 무너져도 솟아날 굼기 있다 안카나”하는 속담에만 의지하고 산다. 너무도 고달픈 삶이기에 나병환자 아들이라도 있는 것이 악에 받쳐 살게 하고, 미워할 대상이라도 있는 것이 맥을 놓지 않게 도와주는 삶. 그러나 춥고 배고프고 서러운 살림에도 최소한의 법도가 있고, 인간의 도리가 있고, 무엇보다도 일부러 마련하지 않아도 끝없이 솟구치는 정이 있다. 『한티재 하늘』은 우리의 근원, 민족의 고향에의 순례이다. <동아일보 책의향기 01/3/31 서지문 (고려대 영문학 교수)> '뼈를 깎아서 피로 쓴' 필부들 삶 그가 「뼈를 깎아서 피로 쓴 소설」이라고 말한 대하장편 소설 『한티재 하늘』(지식산업사)이 출간됐다. 총 8∼10권으로 기획된 이 소설은 작가가 20년 전 구상한 소설이지만 3년전부터 쓰기 시작하여 우선 2권이 먼저 출간됐다. 대개의 대하장편들이 신문연재나 문학잡지의 연재를 거치는 것과 달리 이 소설은 부천의 작은 개척교회인 민들레교회 주보에 연재돼 왔다. 그는 스스로 『20년 전부터 썼다면 이미 완성됐겠지만 쓸데없는 치기나 젊은 혈기 때문에 지금처럼 곰삭은 글이 나오지 못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 작품은 거창한 이데올로기나 굵직한 인물을 다룬 대하장편과 거리가 멀다. 경북 안동의 한티재를 배경으로 살아가던 화전민의 이야기로 시작되는 이 소설은 1891년 구한말에서 일제치하인 1937년까지를 배경으로 한다. 총 4부로 기획중인 이 소설의 1부가 끝난 셈. 앞으로 해방과 6·25, 60년대 5·16 이후의 삶까지 다뤄지게 된다. 우선 이 소설에는 뚜렷한 주인공들이 없다. 작가 스스로 『역사의 그늘에서 신음해온 필부들의 삶을 그리고 싶었다』고 말했듯이 많은 백성들이 소설의 주인공이다. 1부는 어린시절 참 많은 얘기를 들려주었던 어머니로부터 전해들은 인물의 기록이다. 문둥병 때문에 소박데기가 된 분옥이 아지매, 그를 색시로 데려간 떠돌이 동준이 아저씨, 아버지가 반란군이어서 할아버지가 못물에 빠져 죽은 서억이 아저씨 이야기 등이 소설 속에 녹아있다. 그의 소설 「몽실언니」가 6·25를 배경으로 힘겹게 살아야 했던 어린이들의 이야기를 리얼하게 그렸다면 「한티재 하늘」은 좀더 시대공간을 넓혀 다양한 백성들의 이야기를 다루고 있는 셈이다. 병마와 싸우면서도 결코 펜을 놓지 않는 권씨는『죽는 그날까지 이 소설을 집필하겠다』고 말한다. 권씨는 교회종지기로 일하다가 최근에는 동네 청년들이 지어준 4평짜리 움막에서 두 마리의 개와 함께 살고 있다. 자신에 대한 세인들의 관심조차 부담스럽다는 그는 『이 소설을 읽고 우리들의 선조는 지금보다 더 어려운 시대를 잘도 헤쳐나 왔다』는 것을 깨닫고 『조금 어려워졌다고 목숨을 버리거나 인륜을 거스르는 일이 없었으면 좋겠다』. <경향신문 98/11/23 오광수 기자>